[Why] 대리·과장 가뭄에 '템퍼러리'가 잘 나간다는데…

    입력 : 2017.08.12 03:02

    학교 공부·출산·해외여행차 5~8년 차 직급서 퇴직 많아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제 시간 맘대로 쓸 수 있고
    연봉도 기대 이상으로 벌어요"

    [Why] 대리·과장 가뭄에 '템퍼러리'가 잘 나간다는데…
    국내 유명 IT회사에서 7년 동안 일했던 정모(38)씨는 작년 말 회사를 그만두고 '계약직 선언'을 했다. 주변에선 "제정신이냐"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막상 회사를 나오니 정씨 정도의 경력을 가진 프리랜서를 찾는 곳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제 별명이 요즘 산휴(産休) 대체자예요"라고 했다. "5~8년 차 대리·과장 직급이 요즘 회사를 많이 그만두거든요.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하거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출산 휴가를 길게 쓰거나 외국 가서 쉬다 오는 이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전 이런 분들을 대신해 2~3개월씩 바짝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거죠. 출산휴가 쓴 사람 대신 일해준 것만 세 번쯤 돼요."

    최근 정씨처럼 안정적인 정규직을 포기하고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몇몇 헤드헌터들은 이렇게 잠시 일해주는 일꾼을 '템퍼러리(temporary·임시)'라고 부른다. 직장을 잠시 쉬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소위 갭이어(Gap Year) 족이 늘어나면서, 회사 입장에선 이들의 빈 곳을 잠시 메꿔줄 일 잘하는 사람이 간절해졌고, 일부에선 이들 경력직 프리랜서를 웃돈까지 주면서 계약하려는 경쟁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직종은 템퍼러리"라는 농담까지 나왔다고 했다. 헤드헌터업체 베스트엑스퍼트 방주희 대표는 "회사를 박차고 나간 대리·과장급 직원들의 빈자리를 대신할 경력 있는 일꾼이 금값인 건 사실"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대리·과장 가뭄설에 이어 멸종설이 돌겠어요. 입사 7~8년쯤 되면 누구나 인생의 진로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잖아요. 바로 이때 회사를 나가는 사람, 쉬는 사람이 그만큼 많고요. 이들 대신 바짝 일해줄 인력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거죠."

    스웨덴 패션회사에서 6년 일하다 올해 3월 사표를 낸 박혜경(36)씨도 '템퍼러리' 중 하나다. 그는 회사를 그만둔 뒤 국내 한 대기업에서 10개월 계약직으로 일했고, 현재는 또 다른 외국회사에서 2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엔 '팍(PAC)'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회사도 설립했다. 월급 몇 배 되는 돈을 바짝 벌 때도 있고 또 월급이 간절해질 때도 있지만, 박씨는 "회사 다닐 때보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길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몇몇 유명한 토플·GMAT 학원에는 5~8년 차 회사원이 북적인다. 8일 강남역 부근 H학원 오후 7시 GMAT 강의를 듣는 80여 명 학생 중 절반가량이 대리·과장급 회사원이었다. 올해 6년 차 대리라는 지소연(34)씨도 미국 MBA 유학을 고민하며 학원을 찾은 경우다. 지씨는 "최근 회사 내 몇몇 선배들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사표를 냈는데, 그들의 공백은 업계에서 꽤나 일 잘한다고 소문난 프리랜서가 메꿔주고 있다"고 했다.

    템퍼러리라고 그러나 앞날이 장밋빛인 것은 물론 아니다. 박혜경씨는 "클라이언트에게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일한 보수가 3~4개월 후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회사 다니던 때보다 더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경제 계획도 더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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