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숨진 A군이 쓴 유서(오른쪽)와 A군의 아버지가 조작한 쪽지(왼쪽). 필체가 다르고, '아버지' '아빠' 같은 호칭도 다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중학생의 유품에서 뒤늦게 학교 폭력을 암시하는 쪽지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나, 이 쪽지는 아버지가 만들게 한 ‘가짜’로 드러났다.

11일 울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15일 오후 6시 34분쯤 울산 한 청소년문화센터 옥상에서 중학생 A(13)군이 투신해 숨졌다. A군은 ‘아버지 미안해요’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A군의 아버지는 경찰과 학교 측에 ‘학교 폭력으로 인한 자살’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 한달 뒤인 7월 21일 A군의 아버지는 한 언론매체를 통해 “(A군의) 옷 주머니에서 학교 폭력을 암시하는 쪽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 쪽지엔 ‘학교가 싫다’ ‘애들이 나를 괴롭힌다’ 등의 내용과 함께 특정 학생 2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 쪽지를 학교 폭력의 단서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으나, A군의 아버지는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보름 후 A군의 아버지는 “큰 아들을 시켜 쪽지를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그는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해 (증거를) 조작했다”면서 “경찰이 학교와 스쿨폴리스(SPO)를 조사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나를 조사하며 가정문제로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이 쪽지는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된 당시부터 조작 의혹이 제기됐었다. 당초 발견된 A군의 유서와 필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호칭 역시 유서엔 ‘아버지’, 쪽지엔 ‘아빠’라고 다르게 적혀있었다.

한편 이 쪽지에 적힌 학생 2명은 A군이 숨지기 한달 전인 5월 16일 열린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가해학생으로 거론된 이들 중 일부로 확인됐다. 당시 학폭위는 전수조사를 통해 A군의 옆·앞·뒷자리 학생 3명을 가해학생으로 지목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나, 이들이 A군의 말투를 따라하는 등 장난을 친 내용만 밝혀져 학교폭력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이 쪽지가 발견됐다는 언론보도 후 상황은 학교폭력에 대한 미진한 대응 탓으로 흘러갔다. 최근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과 학부모는 숨진 A군이 봉안된 하늘공원을 찾아 A군과 유가족에게 용서를 빌기도 했다.

경찰은 “메모의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폭력 여부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