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공론화 全과정을 용역업체에 떠넘긴 공론화委

    입력 : 2017.08.11 03:22 | 수정 : 2017.08.11 07:24

    국조실, 25억에 조사용역 입찰공고
    토론회 포함한 전체 숙의 과정과 민감한 조사결과 해석도 맡겨
    조사업계 "숙의 진행·결과 분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아닌데…"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에 맡긴 상태다. 그러나 여론조사 회사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공론화위원회가 중요한 모든 결정을 사실상 조사 용역업체에 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론조사를 실시할 조사업체에 단순한 조사 업무만 맡겨야 한다. 하지만 ▲토론 쟁점 설정 ▲자문단 구성 방안 ▲최종 결과 해석 등 공론화 과정 전체에 대한 설계와 운영을 통째로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8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위한 시민참여형 조사' 용역을 최대 25억원 입찰에 부친다고 공고했다. 이 공고에 첨부된 '사업 제안 요청서'에 따르면 용역 내용을 ▲신고리 5·6호기 공사에 대한 1차 조사 ▲시민참여단 추출 및 확정 ▲토론회를 포함한 전체 숙의 과정 진행 ▲최종 조사 결과를 포함한 전체 자료 분석 등 4개 부문으로 명시했다. 이 중에서 숙의 과정 진행과 최종 조사 결과 분석 등에 대해 조사업계에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란 의견이 많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왼쪽) 위원장과 이윤석 대변인이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4차 회의를 마치고 위원회를 나서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왼쪽) 위원장과 이윤석 대변인이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4차 회의를 마치고 위원회를 나서고 있다. /성형주 기자
    공론조사 입찰에 참여하는 조사업체는 공정한 숙의 과정 진행을 위한 검증위원회 및 전문가 자문단 구성 방안과 토론 의제(쟁점) 선정 방법 등도 제안서에 담아야 한다. 시민참여단에 제공할 정보(자료집)의 신뢰성과 전문성 확보 및 팩트 체크 방법의 제시도 용역 범위에 포함됐다. 의사 결정에 필요한 중요 내용 거의 모두를 업체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토론 쟁점이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과 속행'만이 아니라 '찬핵 대(對) 탈핵'으로 확대될 것에 대비한 대응 방안까지 내놓도록 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찬성(42%)과 반대(40%)는 박빙이지만, 원전 자체의 필요성, 즉 찬핵(59%)은 탈핵(32%)보다 갑절가량 높았다. 일각에선 "시민참여단의 토론이 찬핵과 탈핵으로 번질 경우 최종 조사 결과가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속행 쪽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을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 아니냐"고 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시민들이 참여해 충분히 토의하고 의논하는 '숙의(熟議)' 과정을 거치기 위해 실시한다는 공론조사에서 원전 필요성과 같은 근본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막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같은 계획에 따르면, 가장 민감한 사안인 '원전 건설 중단과 속행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의 해석'도 조사업체가 해야 한다. 사업 제안 요청서에선 '최종 결과 해석에 대한 사전 규칙', 즉 원전 건설 중단에 대한 찬반 비율 차이가 적을 경우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제시하도록 했다. 조사업체 관계자는 "시민참여단 350명 대상 조사에서 찬반이 오차 범위(±5.2%포인트) 이내라면 가부(可否) 동수로 해석하는 것이 통계의 기본 법칙인데 무슨 사전 규칙을 제시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론화 과정 설계와 세부 방안 수립을 조사업체에 전적으로 맡기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조사협회에 가입한 40여 개 국내 조사회사 중에서 지금까지 공론조사를 두 번 이상 해본 회사는 한 곳에 불과하고 한 번 해본 회사가 두 곳이다.

    공론화위와 조사업체의 역할에 대해 공론화위 이희진 대변인은 10일 "조사와 숙의 과정 모두 공론화위가 전체적으로 설계하고 주도하며 실제 조사하는 역할을 조사업체가 대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조사업체 선정 기준이 단순한 조사 업무 능력이 아니라 조사업체가 제시하는 공론화 방법론의 타당성과 적합성 등이기 때문에 핵심적인 결정은 우리가 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조사업체가 최종 조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용역 기간은 공론화위의 3개월 활동 시한 하루 전인 10월 20일까지다. 업체가 최대한 시간을 쓸 경우 공론화위는 검토할 시간도 없다. 결국 공론화위가 정부에 제출할 권고안에는 조사업체의 최종 보고서 내용이 거의 그대로 담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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