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현충원 소풍

  • 신수진·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입력 : 2017.08.11 03:03

    신수진·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신수진·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소풍 온 아이들의 교복과 반질반질한 머리칼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현충원 비석들은 눈물처럼 곱고 조화처럼 쓸쓸하다. 어느 아들의 묘지 앞에 어머니는 한낮 해를 등지고 앉아 붉은 울음을 토해낸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서로를 간지럽히며 태양을 마주 보고 걷는다. 그렇게 숱한 비명과 비명 사이에, 숱한 바람과 바람 사이에, 나의 서른이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인다. 죽기에 좋은 날이 있듯이 살기에도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

    6년 전 교직 생활 중 다녀왔던 소풍 장면을 떠올리며 시 한 편을 쓴 적이 있다. 체험 학습차 해마다 찾았던 현충원은 서른 즈음부터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눈 부신 햇살 속에 잠들어 있는 애국 용사들 위로 그늘 한 점 없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보았고, 태극기 아래 도열한 묘소마다 바쳐진 꽃 대신 누런 상복과 새끼줄을 보았다. 그곳은 생(生)과 사(死)가 교차하고 과거와 미래가 조우하는 곳이었다. 놀이공원 가면 아이들보다 바이킹을 더 많이 탔던 내가 멀미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돌연 대낮의 무덤 안에 수장된 듯 현기증을 느끼던 바로 그 순간부터. 그래서인지 나는 그해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작가로 전업하게 됐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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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뛰놀던 창경궁과 수학여행으로 찾아간 경주 불국사를 훗날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듯 지금 아이들에게 현충원은 특별한 의미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은 선열들이 죽음과 맞바꾼 유산임을 언젠가 아이들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때의 제자들이 지금은 군대 다녀왔을 나이가 됐으니 이제는 알 수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눈 감으면 꽃잎 흩날리는 내 인생의 3막이 한창이다. 마지막 소풍인 줄 알았더니 그때 혼몽의 봄바람은 개화를 앞둔 르네상스의 서막이었다. 어느덧 폭염도 물러가는 처서(處暑)를 앞두고 있다. 계절이 지듯 찬란하게 스러진 청춘의 시간을 여기 고이 봉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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