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편지] 미국 청년이 가르쳐준 예쁜 우리말 '맞아 맞아'

  • 양경자 서울 동작구

    입력 : 2017.08.11 03:11

    양경자 서울 동작구
    양경자 서울 동작구

    3년 전 미국에서 딸이 결혼할 때 하객으로 참석한 그를 잠깐 보았다. 누군가가 "이쪽은 신부 어머니이고, 이쪽은 따님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직원"이라고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형식적 인사만 나눈 뒤 까맣게 잊었다가 며칠 전, 한국지사에 출장 왔다는 그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미국 청년인 그는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 외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한 한국어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과거 한국에 유학 와서 3년간 공부한 이야기, 한국이 좋아 아예 여기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 등등을 유쾌하게 늘어놓았다.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가 잠깐 사이에 오래전부터 만나 온 사람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낯가림과 편견이 심한 내 까칠한 성격에, 더구나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과 이렇게 짧은 시간에 편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별것 아닌 내 작은 이야기에도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쳤다. 어쩌다가 좋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을 찡그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아, 맞아" 했다.

    아! '맞아, 맞아' 그거였다. 짧은 시간에 낯선 이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결정적 힘을 발휘한 것이 '맞아'라는 단어였다. 나는 태어나서 육십 년 넘게 살면서 '맞아'라는 우리말에 얼마나 인색했던가. 상대방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인정한다는 뜻이 담긴 말 '맞아', 난 네 편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 '맞아', 네 말이, 네 생각이, 네 결정이 옳다는 이 완벽한 긍정의 단어, 이렇게 쉽고 예쁜 말을 왜 그리도 무심코 흘려 넘겼던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왜 하필 외국인으로부터 발견했는지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출산 예정일을 코앞에 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기 이름을 '해든'이라 하면 어떻겠냐고 내게 물었다. '해가 들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 했다. 미국인 사위가 열 달 내내 한국어 사전을 뒤져가며 찾아냈다고 한다. 해든, 해든. 가만히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아~ 부드럽고 따뜻하고 참 좋다. 내 것, 우리 것,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가. 순우리말 이름을 갖고 세상에 첫발을 디딜 손자 '해든'이를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 이렇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해 준 '맞아, 맞아' 청년 샨돌이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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