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정권과 검찰의 '新밀월', 정상 아니다

    입력 : 2017.08.11 03:15

    靑 입김 작용한 검찰 인사에 盧정부 때와 달리 저항 없어
    탄핵 이후 '적폐'로 몰린 까닭
    검찰이 정권과 '운명 공동체'…이 정권 비리는 누가 감시하나

    최재혁 논설위원
    최재혁 논설위원

    2003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진 '검사와의 대화'에 대해 노무현재단은 이렇게 기록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국 지검 평검사들과 공개토론을 갖다. 토론은 사회자 없이 대통령 주재 아래 열리다. 토론자로 나온 검사들은 시종일관 대통령에 대해 공격을 쏟아내다…이날 저녁 검찰총장이 사퇴하다.' 노 전 대통령은 다음 날 청와대 회의에서 "상상할 수 없는 발언도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대체로 지켜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깨졌다. 지난달 검사장 인사에 탈락한 두 명의 경우, 14년 전 그 일이 아니면 이유가 설명되질 않는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나중에 그 토론회를 두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 했다.

    검사와의 대화를 계기로 검찰총장이 교체됐다. 노 전 대통령은 새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다짐을 받으려 했다. "검찰총장 높다 해도 대통령 밑에 있습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 통치 철학을 따라야 하지요?" 노 전 대통령은 결국 "맞습니다"는 대답을 듣고도 비슷한 얘기를 또 했다고 한다. "검찰이 과거에는 힘이 셌고 나쁜 일도 많이 했습니다. 나에 대한 첩보도 많이 갖고 있겠지만 그런 걸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에게 "그런데 왜 검찰은 나한테 사과를 안 합니까?"라고 따지듯 물었다고 한다. 검사와의 대화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검찰총장은 간부회의를 갖고 어떤 식으로 사과할지를 의논했다. 업무보고를 핑계로 대통령과의 독대 기회를 만든 검찰총장은 '일전에 저희 평검사들이 불편하게 한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흡족하지 않았던지 "알았다"고만 했다고 한다.

    2003년 3월9일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인사를 통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노무현 정권과 검찰은 자주 부딪쳤다. 초반에는 국가보안법, 한총련 문제로, 중·후반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신설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검찰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 정부 출범 1년 차에 검찰은 대통령 측근 비리 및 불법 대선 자금 수사로 집권 세력을 당황케 했다. 다른 큰 수사가 이목을 끄는 와중에 대통령 측근들 자금 추적을 은밀하게 진행, 청와대 뒤통수를 쳤다. 여야(與野)와 모든 기업이 대상인 대선 자금 수사로 번지자 정권이 어찌할 수도 없었다. 또 측근들의 연이은 구속에 대통령은 "죽을 맛"이라고 했다.

    어제는 560명이 넘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있었다. "인피(人皮)를 벗기는 형벌에 준하는 검찰 개혁"을 주장하던 이를 민정수석에 앉히면서 시작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접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셈이다. 역시 눈에 띄는 것은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한 검사를, 공안 사건을 지휘하는 2차장에 특수부 출신을 발탁한 것이다. 둘 다 최순실 사건 공소 유지가 제일 큰 임무인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이라고 한다.

    14년 전과 달리,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인사에 어떤 저항도 없다. 다 자업자득이다. 지금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충견(忠犬) 노릇을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검찰 자체가 적폐(積弊)로 몰렸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검찰이 정권과 운명 공동체처럼 엮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집권 세력 내부에서는 박근혜 뇌물 사건이 무죄가 나면 정권 정통성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검찰 내 주류로 떠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석에선 '지금 이 분위기에서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수사한 입장에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사건을 놓고 검찰과 정권이 이렇게 얽히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다 적폐 청산이란 명분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정상은 아니다. 이 정권도 무균(無菌)상태는 아닐 텐데 그들 비리는 누가 감시하고 파헤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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