壽石 이사와 만화책 이사

    입력 : 2017.08.11 03:03

    [Books 레터]

    일곱 살 때였죠. 처음 이사를 갔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하는 서울 북부 지구. 그런데 이사 당일 제가 없어졌답니다. 워낙 망각의 달인인지라, 모친이 주입한 그날의 기억이죠.

    초등 1학년. 이전에 살던 동네와는 차로 1시간 떨어진 거리였으니, 생면부지 동네였죠. 집에서는 난리가 났답니다. 경찰서에 미아 신고까지. 부모님은 이사하랴, 아이 찾으랴 넋이 빠졌는데, 석양이 도봉산에 걸리자 제 발로 터벅터벅 돌아왔다죠. 먼지 풀풀 나도록 맞은 뒤 어디 다녀왔냐고 닦달을 당했는데, 천연덕스러운 대답. 이 동네 만홧가게가 전 동네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더 많다고 했다는군요. 그 시절 베스트셀러 중에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가 있었습니다. 과장 한 스푼 넣어 빗대자면, 제게는 만화가 그랬던 거죠.

    만화라면 무조건 홀대하는 부모님들에게도 그런 변명을 하고 싶군요. 그때 만화를 좋아했던 소년이 결국 그림 없는 책도 열심히 읽게 되고, 결국은 Books의 책임도 맡게 됐다고요. 조선일보 문학·출판팀에 유독 그런 기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북캉스 질문 리스트에 '내 인생의 만화'가 포함된 까닭이기도 합니다.

    며칠 뒤 또 이사를 합니다. 누구에게나 이사는 부담스러운 일이겠지만, 문화부 기자에게는 한층 더 그렇습니다. 책 때문이죠. 견적을 뽑아봤는데, 같은 평수 다른 집보다 이사 비용을 훨씬 더 부르더군요. 수석(壽石) 이사 다음으로 힘든 게 책 이사라죠. 돌덩이 다음이 책 짐이라는 게 전문업체들의 푸념입니다. 그런 구박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아껴왔던 만화들을 포기하기는 싫더군요.

    '예스24 마니아 회원'들이 제출한 만화 리스트는 총 940종입니다. 만화 부문 기사를 쓴 정상혁 기자 표현대로, 실로 다채로운 빛과 무늬죠. 그만큼 만화는 취향의 전시장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인생 만화, 당신의 취향이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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