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한국어는 잊어야 했죠"

    입력 : 2017.08.10 03:04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우즈벡 '한국어교사' 김이스크라 "모국어 그리워 50세에 다시 배워"

    1937년 9월, 연해주에 살던 약 17만 한인(韓人)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 이주됐다. 당시 소련은 조선을 점령한 일본과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국경 지대인 연해주에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스탈린은 한인들이 일본 편을 들거나 첩자로 활동할 것을 두려워했다. 김이스크라(69·사진)씨의 부모도 그렇게 중앙아시아행 열차에 태워진 한인 중 한 명이었다. 올해는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한 지 80주년 되는 해다.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고려인'이라 부른다.

    김이스크라
    /김지호 기자
    김이스크라씨는 1948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그는 쉰 살이 될 때까지 한글을 잊고 지냈다. 이제는 타슈켄트에서 고려인 4~5세대를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어엿한 '한국어 교사'다.

    그는 최근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에서 열린 한국어 교사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씨는 다섯 살 때까지는 한국어만을 썼다고 한다. 오히려 러시아어를 전혀 못했다. 학교에 입학할 무렵 교장은 "러시아말을 모르는 아이는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2년간 소련인 가정에서 러시아어를 배운 후에야 입학 허가가 떨어졌다. 그런 그가 11학년(고교 과정)을 졸업할 무렵엔 전교생 중 가장 러시아어를 잘하는 학생이 됐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어를 익히느라 한국어는 완전히 잊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다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쉰 살 무렵이었다. 물리학·수학 교수로 일하다 은퇴한 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소련이 해체돼 '민족어 금지 정책'도 없어진 후였다. 그는 "더 늦기 전에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지 한국어 교실을 오가며 5년을 배운 끝에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5년부터는 다른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김씨는 "나 같은 고려인에게 한국은 여전히 정체성이자 뿌리"라고 했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여전히 '2등 인생'을 산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주최하는 공식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고,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기도 어렵다. 김씨는 "차별을 견디지 못한 젊은 아이들이 앞다투어 현지 고려인촌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영어와 러시아어를 배우느라 한국어 교실을 잘 찾지 않는다"며 "고려인 4~5세대 아이들이 '카레이스키(고려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말을 가르치며 평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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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소련 공화국에 사는 한국인 동포, 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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