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윤봉길 의사가 보부상이었냐니…

  •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입력 : 2017.08.10 03:08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윤주 윤봉길연구소 이사장
    매년 '광복의 달' 8월이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 고택을 방문한다. 조국 광복의 계기를 만들어준 윤 의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정부는 윤 의사 고택과 그 일대 4만여 평을 1972년 사적(史蹟) 제229호로 지정했다. 그 후 1984년 예산군이 사적지 중심부에 충의관(忠義館)을 건립, 윤 의사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담은 기록화 11점을 전시하며 청소년 교육장으로 활용해왔다.

    그런데 예산군은 사적지 관리청인 문화재청의 승인 없이 2001년 충의관 현판과 윤봉길 기록화를 철거하고 '보부상유물전시관' 현판을 내건 뒤 보부상들의 도장과 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이 이를 보고 "윤봉길 의사가 보부상 대장이었느냐"고 묻는 실정이다. 윤 의사는 보부상 대장도 아니며, 그들과 어떤 관련도 없다. 이렇게 윤 의사의 삶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될 우려마저 있다. 사적지는 역사 의식과 민족 정신을 배우는 터전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엄격히 관리되어야 할 윤 의사 사적지 경내에 보부상유물전시관이 어떻게 설치됐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윤 의사는 고향에서 야학당을 개설해 야학운동을 전개한 교육자요, 한시 300여 편을 쓴 시인이며, 신사조를 수용하고 농민운동을 펼친 계몽가이고, 유학(儒學)에 매진한 청년 선비다. 또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애국자요 혁명가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인 천장절 및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 단상에 폭탄을 던져 일제 침략군 수뇌부를 처단했다. 이 의거는 중국 장제스 총통을 감동시켜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장 총통이 한국 독립을 위해 적극 나서게 된 이유가 되었고, 이후 제2차 대전 종전 후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은 중요 계기의 하나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윤 의사의 이런 위업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동안 문화재청과 예산군에 여러 차례 시정 복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다른 곳에 보부상유물전시관이 건립되면 이전하겠다"는 등 핑계를 대며 돌부처처럼 요지부동이다. 관료들의 이런 태도야말로 새 정부가 청산 대상 1순위로 삼은 적폐 아닌가 싶다. 문화재청장은 윤봉길 의사 사적지 경내에 불법 설치된 보부상유물전시관을 당장 철거하고 원래의 충의관을 조속히 복원하기 바란다.

    [기관정보]
    문화재를 관리·보호·지정하는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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