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또 등장한 '5년 무료 서비스'

    입력 : 2017.08.10 03:14

    "탈원전해도 전기료 인상 없다" 60년 계약서에 '5년 무료' 호객
    盧 정부도 1100조원 복지 플랜 "5년간 돈 안 든다"며 발표
    이후 청구서엔 누가 돈 내나

    이진석 경제부 차장
    이진석 경제부 차장
    기막힌 우연인지, 11년 전 노무현 정부에서 내놓았던 1100조원짜리 복지 플랜 '비전 2030'도 첫 5년간은 돈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을 해도 5년 내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는 것과 닮은꼴이다. 어떻게 이렇게 닮았는지 실소가 나올 정도다.

    2006년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노무현 정부는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세정 합리화 등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초기 단계에는 국민연금 개혁, 읍·면·동사무소의 주민복지센터 전환 등 제도 혁신에 집중하므로 추가 소요가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당시 한 고위 경제 관료는 "5년간은 추가적인 재원 조달이 필요 없도록 설계한 것이 '비전 2030'의 특징"이라고 했다. 25년간 1100조원이 들어가지만, 당장 5년간은 무료라고, 그러니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정부는 탈원전도 처음 5년간은 전기료 인상이 없다고 장담한다. 가동 중인 원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폐쇄되는 원전은 지난 6월 문을 닫은 고리 1호기뿐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 시절 착공한 신한울 1·2호기 등 원전 3기가 가동에 들어간다. 이래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차관이 전기료가 오르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중이다. 5년 뒤부터는 일이 커진다. 2022년 월성 1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원전 11기의 수명이 끝난다. 국내 발전 설비의 15%나 된다. 5년 무료 서비스가 끝나면 1100조원 청구서가 날아드는 '비전2030'처럼, 탈원전도 5년 후부터는 전력 설비 부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25년(비전2030), 60년(탈원전)짜리 계약서를 내밀면서 5년 무료 서비스를 앞세워 호객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용과 효과에 대해 갖가지 통계와 수치를 늘어놓는 것도, 그런 숫자가 확실하다는 보장이 없는 것도 닮았다. "5년 내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는 말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5년짜리 정책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탈원전 여부에 대한 결정을 공론 조사니. 배심원단이니 하면서 결국 여론조사에 떠넘길 모양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한다. 원전이 없어도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없을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전기료는 어떻게 될지,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원전 산업에 미칠 영향은 어떨지 등을 제대로 계산하고, 알리고,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비전 2030'에는 이상한 여론조사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힘에 부치는 1100조원짜리 복지 플랜을 추진하려는 것이 "우리 국민이 희망하는 2030년 대한민국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거는 여론조사였다.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과 같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 수준은 낮지만 세금 부담이 적은 나라'와 '북유럽처럼 세금을 많이 내지만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 중에서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67.8%가 북유럽 모델을, 30.5%는 미국 같은 나라를 선택했다고 했다.

    질문에 문제가 있었다. "만약 귀하가 선진국으로 이민을 간다면, 다음과 같은 두 유형의 나라 중에 어느 나라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라, 이민자로 합류할 나라 모습을 물었다. 마음대로 이민을 간다면 어느 나라로 가겠느냐고 질문해 놓고, "국민은 부담이 늘더라도 복지 혜택이 큰 나라를 원하더라"고 발표했다. 억지고, 왜곡이다. 정부는 이렇게 물었다는 걸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일본의 등쌀과 견제를 견디면서, 핵과 대륙간탄도탄(ICBM)을 양손에 쥔 북한에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할 나라의 모습을 물어야 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해야 성장과 복지, 오늘과 내일을 조화시켜서 살아가야 할지 물어야 했다. 탈원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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