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학원들만 휘파람 분다

    입력 : 2017.08.09 03:05 | 수정 : 2017.08.09 07:58

    대학 학점 등은 쓸모없고 필기시험·면접이 당락 좌우

    학원비 한달 수십만원 예사지만 채용 기준이 없어 학원에 의존
    高價 면접 컨설팅 찾아다니기도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공기업 준비 학원. 막 오전 수업을 마친 취업 준비생 100여명이 점심을 먹기 위해 쏟아져 나왔다. '현 블라인드 채용 자문위원 직강! 공기업 채용의 진실! 비밀을 공개합니다'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다. 이 학원은 오는 20일 오후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단기합격 설명회'를 연다. 취업 준비생 2000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해 노량진 학원가의 한 대형 강당을 통째로 빌렸다. 이 학원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기관·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방침을 밝힌 후, 공기업 입사 시험 관련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 걸려온다"며 "그동안 '스펙' 때문에 공기업 취업을 포기했던 취준생들이 시험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공기업·공공기관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면서 공기업 취준생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학원가에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에 이어 '공준생(공기업 취업 준비생)'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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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한 공기업 준비 학원에서 공기업 취업 준비생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이 학원은‘공기업 블라인드 채용의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광고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나이·학점 등을 입사지원서에 적지 않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성적과 전공 필기시험, 면접으로 신입 사원을 뽑는 제도다. 이른바 '스펙' 대신 시험이 중요해지면서, 학점이 낮거나 지방대학 졸업생 등이 '공기업 입사' 학원에 몰리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에 다니는 이관영(28)씨는 올 7월부터 한 달에 50만원씩 내고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공기업 학원에 다니고 있다. 공기업 입사를 준비했던 이씨의 선배들은 필기시험을 통과해도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출신 학교 때문"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이씨는 "이젠 시험만 잘 보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이들이 주로 듣는 강의는 NCS와 면접이다. NCS는 직무와 관련된 지식이나 기술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정부가 문제를 만들어 놓으면, 공기업들이 이 중에서 뽑아 쓰는 '문제 은행' 식이다. 이 강의는 한 달 수강료가 20만원 안팎이다.

    학원계에서는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에 발 빠르게 대비해 고가의 면접 컨설팅도 내놓고 있다. 서울 강남역 부근 한 스피치 학원은 공기업 면접 대비 일일 특강을 준비 중이다. 특강을 개설하자 취준생 30명이 사전 신청을 했다. 10회 146만원이지만 "수강생이 꾸준히 온다"고 학원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공기업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는 만큼 맞춤형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취준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비싼 수강료는 공기업 취준생에게 큰 부담이다. 서울 종로구의 다른 공기업 준비 학원에서 만난 안모(31)씨의 한 달 학원비는 80만원. 안씨는 공기업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2년 계약 만료로 퇴사하고, 모아둔 돈으로 현재 공기업 학원에 다니고 있다. 안씨는 "학원비는 부담되지만, 블라인드 채용 때문에 NCS 말고는 지원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강의를 듣고 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공기업 입사 준비를 시작한 박모(25)씨는 "KOTRA 입사 패키지 강의를 한 달 20만원을 내고 석 달째 듣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블라인드 채용 때문에 취준생들이 몰리면서 강의를 듣지 않으면 불안하다"며 "정부에서는 학벌을 가리고 실력 중심 채용을 하겠다고 하지만, 취준생들은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돈 들여 필기시험 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무원만큼 공기업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에 취준생들이 몰리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블라인드(blind) 채용

    입사 지원서에 출신 학교와 지역, 학점, 가족 관계, 신체 조건 등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채용 방식. 배경이 아니라 실력에 따라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취지이다. 모든 공공기관·공기업들이 올해 하반기 채용 때부터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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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업 수장 물갈이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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