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82] 최초의 동전, 학생들 사이에 인기 폭발… 성탄 선물도 세뱃돈도 동전이 '0순위'

    입력 : 2017.08.09 03:11

    1959년 10월 20일 아침부터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건국 후 최초로 우리나라 동전 발매를 시작하자 이를 손에 넣으려고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애초엔 8·15 광복절에 발행하려 했으나 미국 재무부 조폐국에 의뢰해 제작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아 늦어졌다. 최초로 선보인 건 10환, 50환짜리 2종. 첫날로 재고량 거의 전부가 풀려나갔다.

    대한민국 첫 동전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액면가는 하찮았는데도 특별한 기념주화급 대접을 받았다. 인기의 상당 부분은 반짝이는 '쇠붙이 돈'에 대한 초·중생들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른들이야 일제강점기에 동전을 써 봤지만, 어린이들에겐 이보다 더 신기한 게 없었다. 동전 바꿔 달라는 학생들이 한국은행에 너무 많이 몰려들자 몽둥이 든 경비원은 물론 교통경찰관까지 동원돼 질서를 잡아야 했다. 어떤 아이들은 시중은행 주변을 서성이다가 퇴근하는 여성 은행원의 치맛자락을 붙들며 "동전 하나만 바꿔 주세요, 네?" 하며 애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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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10월 20일 대한민국 최초의 동전이 발행되던 날‘은행에 손님들 사태가 일어났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오른쪽은 100환, 50환, 10환짜리 첫 동전. 100환짜리는 다른 동전보다 한 달여 늦게 발행됐다.
    주화 첫 발행을 얼마나 특별하게 여겼는지 한국은행은 '동전에 대한 감상문'까지 모집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과 새해 세뱃돈으로도 새로 나온 동전이 인기 0순위였다. 한국은행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충분히 쓰도록 동전을 12월 23일 추가 발행하겠다'고 발표할 정도였다(조선일보 1959년 12월 22일자). 요즘 어른들이 세뱃돈 주려고 빳빳한 지폐를 바꿔놓듯 1960년 설날을 앞두고 어른들은 동전 구하느라 며칠씩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신문은 '동전으로 세뱃돈을 준 아버지는 한 푼을 주고도 몇 갑절 효과를 냈고 지폐밖에 못 준 아버지는 권위만 상실했다'고 썼다.

    그러나 동전은 물건으로서는 매력이 있었지만 상거래 수단으로서는 천덕꾸러기가 돼 갔다. 꽤 들어가는 제작 비용에 비해 휴대나 돈 세기에 불편해 실용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처음 발매한 지 3개월여밖에 안 된 1960년 초부터 "동전이 거리, 상점, 심지어 은행에서도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 다 어디로 갔나"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신문은 '1959년 새로 만들어진 수수께끼'라며 '말만 들었지 보지 못한 것은?'이라는 문제를 냈다. 정답은 '새로 나왔다는 우리나라 동전'이었다. 1960년 7월 말까지 약 10억환어치 발행한 동전이 잘 통용되지 않자 한은은 한때 동전 발행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도 했다. 그래도 1970년대 들어 공중전화, 버스 요금, 자판기용으로 동전의 설 자리가 늘어난 덕에 꾸준히 명맥을 이어 왔다.

    동전이 소액 화폐의 꽃이었던 시대는 어디로 가고, 이젠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동전을 모아 지폐로 교환하려고 은행에 가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노골적으로 냉대한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동전을 회수 중이다. 전자상거래 확산으로 화폐 자체가 퇴물이 되어가는 시대에 그 첫 타격을 동전이 받고 있다. 한은은 한 해 제작비가 600억원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쓰기 불편한 금속 덩어리라는 점도 동전의 숙명적 한계로 지적된다. 58년 전 대한민국 첫 동전이 나온 지 3개월밖에 안 됐을 때부터 튀어나왔던 불만과 거의 판박이다. 동전은 수천년 역사의 화폐이긴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와는 불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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