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칼럼] 종말의 날 시계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 박두식 부국장

    입력 : 2017.08.09 03:17

    미 정부·언론의 말만 보면 한반도는 흡사 전쟁 前夜
    文 정부 '전쟁 불용' 외칠 뿐 해법도, 사태 수습도 못 해
    종잡기힘든 트럼프·김정은이 한반도 운명 좌지우지

    박두식 부국장
    박두식 부국장
    미국 쪽에서 들려오는 얘기만 놓고 보면 한반도는 전쟁 전야(前夜)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언론은 연일 '군사 수단' '무력' '전쟁'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핵폭탄 사용 때 발생하는 버섯구름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표지에 실으면서 'It could happen(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그만큼 위험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상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이 못 견딜 때까지 압박' '(중국 등의 반대로 유엔 제재에서) 대북 원유 공급 중단 조치가 빠진 게 아쉽다'고 한 것은 '전쟁 불가'라는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이었을 수 있다. 대북 압박과 제재만으로도 북을 '핵 포기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으니 섣부르게 전쟁이나 무력 사용 가능성의 문을 열어둘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정권 핵심 인사들의 판단이다.

    이 정부는 자칭 '3기(期) 민주 정부'다. 1기 김대중, 2기 노무현 정부를 잇는 정권이라며 스스로 이렇게 부른다. 김·노 정부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실제 이상의 공포를 드러내곤 했다. 김·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에 따르면 2002년 2월 방한(訪韓)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경의선 철도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을 찾았다. 부시는 이 자리에서 "북한을 침공(invade)할 의사가 없다"고 선언했다. 방한을 앞두고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더불어 '악(惡)의 축'이라고 했던 부시의 이 발언을 두고 훗날 김 대통령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부시를 설득했다"고 했다. '부시의 미국'을 북한보다 더 위협적으로 느꼈던 게 당시 정권 분위기였다. 노무현 정부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늘 미국의 강경한 대북 정책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 군사 조치를 언급하는 빈도만 따지면 트럼프 정부는 부시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과거 미국 정부는 대북 군사 조치를 언급할 때면 "모든 옵션(방법)이 다 포함돼 있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말(言)은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최근 "북이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이라며 그 방안으로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을 거론할 정도다. 북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못 박고 나섰다.

    이달 초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무부 기자실을 찾았다. "미국은 북한의 적이 아니며, 북의 정권 교체나 붕괴를 추진하지 않으며, 북한과 생산적 대화를 하고 싶다"는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틸러슨은 이 회견으로 트럼프 정부 내 인사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그 이후 '대북 대화론'은 자취를 감췄다. 틸러슨의 발언은 그간 한·미 정부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마다 수없이 반복했던 말이다. 이제 그런 말도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마지막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 문재인 정부다. 그러나 '대북 압박을 통한 대화 유도'는 지난 세월 북핵 해결에 실패한 낡은 해법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핵물리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지구 종말의 날 시계(doomsday clock)'는 2017년 초 인류 파멸까지 2분 30초 남았다고 발표했다. 미·소(美·蘇) 수소폭탄 실험을 했던 1952년의 2분과 불과 30초 차이다. 종말의 시간이 앞당겨진 이유 중 하나가 북의 핵실험이다. 올해 북이 두 차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고, 최근 미국의 기류를 반영하지 않았는데도 위험 수위는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북의 핵·미사일 시계는 갈수록 빨리 돌아가고 있다. 조만간 북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 탑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은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나라가 아니다. 이 비상한 시기에 한국의 대응은 더디고 한가하고 엇박자투성이다. 미·일과 중국·러시아가 제각각으로 움직여도 속수무책이다. 위험을 무릅쓸 용기도, 관련국들을 아우를 구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반도 운명의 열쇠는 종잡기 어려운 트럼프와 김정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러다 정말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It could happen)'.

    [나라정보]
    북한 핵 위협… 트럼프, 인내심에 한계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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