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악몽' 딛고… 비틀스 노래처럼 날아오르다

    입력 : 2017.08.08 03:05

    김인경, 4라운드 추격 따돌리고 브리티시 女오픈 우승
    외신들, 비틀스 노랫말 인용 "부러진 날개로 나는 법 배웠다"
    상금 50만불 받아… 올 4개 메이저 한국선수·한국계가 우승

    기사 관련 그래픽
    이런 순간이 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때 30㎝ 퍼팅을 쏙 집어넣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더 행복한 인생이 됐을까요?"

    골프 사상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현재 ANA인스퍼레이션)의 '30㎝ 악몽'으로부터 5년 4개월 만에 메이저 퀸이 된 김인경(29·한화)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생각 아무 소용 없지요. 이미 일어난 일이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싫은 것도 감당하면서 사는 것 아닌가요." 우승의 여운이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화기 너머 김인경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했다.

    그는 "너무 좋아도 좋아하는 내색을 해선 안 되고, 너무 슬퍼도 슬퍼하는 내색을 해선 안 된다는 걸 골프에서 배웠다"고 했다. '이렇게 처절하게 자신을 다스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7일 스코틀랜드 파이프의 킹스반스 골프 링크스(파72·6697야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4시간 30분에 걸친 4라운드는 김인경이 지난 5년간 쌓아온 힘으로 자기에게 걸린 '저주'를 푸는 시간이었다.

    그는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 당시 다 잡은 듯했던 첫 메이저 우승을 마지막 30㎝ 퍼팅 실패로 놓쳤다. 충격적인 경험 이후 그는 명상 여행과 독서, 그림 그리기, 펜싱, 볼링 등으로 빠져들었다. 내면을 다스리는 과정이었다.

    김인경이 이날 6타 차 선두로 출발해 한 차례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는데도 한때 2위에게 2타 차까지 추격당하자 조바심 내며 경기를 지켜봤다는 국내 팬들이 많았다. 이날 김인경은 1번홀(파3)에서 티샷을 핀 바로 옆에 붙여 버디를 잡았고, 8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해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했다. 하지만 9번홀(파4)에서 3퍼트로 보기를 한 이후 더 이상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조디 유와트 섀도프(잉글랜드)가 8언더파를 몰아치며 16언더파로 김인경을 2타 차까지 추격했다.

    김인경의 우여곡절 LPGA 우승기 그래픽

    김인경은 "경기 전에 많은 분이 (내가) 우승할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라도 스스로에게 '우승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떨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인경은 이날 1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우승, 상금 50만4821달러(약 5억7000만원)를 받았다. 올 시즌 3승째를 거둔 김인경은 지난주 세계 랭킹 21위에서 9위로 3년 만에 톱10에 재진입했다.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김인경의 메이저 대회 우승 소식을 외신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 ESPN은 김인경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 '블랙버드(Blackbird)'의 노랫말을 인용해 기사를 썼다. '(김인경의) 부러진 날개는 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그녀가 자유로워질 순간'이라고 했다.

    김인경의 우승으로 올 시즌 LPGA투어 22개 대회에서 한국 선수는 12승을 거둬 2015년 기록했던 최다승 기록(15승)을 경신할 가능성이 커졌다. 올 시즌엔 12개 대회가 남아있다. 또 지금까지 4개의 메이저 대회에서 유소연(ANA인스퍼레이션), 대니엘 강(위민스 PGA 챔피언십), 박성현(US여자오픈), 김인경(브리티시여자오픈) 등 모두 한국 선수나 한국계 선수가 우승했다. 9월 에비앙챔피언십이 시즌 5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대회다.

    [인물정보]
    김인경, 데뷔 11년 만에 메이저 우승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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