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이나 피서지 등 인파가 모이는 곳에 가면 불쑥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BJ(방송 진행자)'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상당수는 생방송이라, 찍히는 순간 인터넷에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나간다. 당사자 동의가 없을 경우 명백한 초상권 침해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공개된 후 신상정보가 털리거나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서울 서교동에 사는 직장인 이모(25)씨는 퇴근 때 빠른 홍대 앞길 놔두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시시때때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터넷 BJ를 피하기 위해서다. 생방송이라 피할 겨를도 없이 얼굴이 온라인에 노출된다. 며칠 전에는 도망가지도 못하게 팔을 꽉 붙들고 카메라를 얼굴에 들이대며 "이 근처 사냐, 술 먹자"고 졸라대는 불쾌한 일을 당했다. 이씨는 "혹시 그 동영상 인터넷에 떠돌까 불안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어 신고를 못한다"고 했다.
인터넷에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일반인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을 '헌팅 방송'이라고 한다. 술에 취했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피서지 여성 등을 찍어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 촬영을 거부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즉시 인터넷에 화면이 뜬다. 얼굴과 신체가 드러난 캡처 사진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다닌다. 게시물엔 나이나 학교 등을 묻는 댓글이 달린다.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선정적인 장면을 내보낸다. 한 인기 BJ는 '미인 찾기'라는 주제로 길거리에서 일반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을 건다. 최근엔 서울 강남역 벤치에 앉아있던 교복 입은 여중생들을 카메라로 비췄다. 그러자 '아마 ○○중학교일 듯' '지금 만나러 가겠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업계에선 아프리카TV와 강냉이TV, 유튜브 등 20여개 인터넷 사이트에서 약 5000여명이 이런 길거리 생방송을 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헌팅 방송'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한 유튜브 채널은 가입자가 14만명에 이른다.
이런 방송이 생방송인 줄 몰랐다가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한 여성은 공중파나 종편 방송 인터뷰인 줄 알고 자신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 등을 말했다. 갈수록 질문이 노골적으로 변해 인터뷰를 거부했고, 인터넷 BJ인 줄 알았다. 영상 삭제를 요구했으나, 이미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된 후였다.
신상이 공개되면서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5일 서울 강남의 한 왁싱 업소(몸의 털을 제거해 주는 곳)에서 여주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의자인 30대 남성은 유튜브에서 BJ가 올린 영상을 보고, 업소를 찾아가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헌팅 방송'은 모두 불법이다. 신체 일부를 동의 없이 찍어 유포하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피해자는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인터넷에 공유한 동영상을 나중에 삭제했더라도 이미 제3자에게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으면 대부분 유죄가 인정된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록 BJ들이 '촬영해도 되냐'고 물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피해자가 방송 영상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면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이들을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BJ들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소를 위해선 영상을 증거로 확보해야 하지만, 생방송이다 보니 쉽지 않다. 사이트 운영사가 BJ들의 길거리 방송을 막기도 쉽지 않다. 아프리카TV의 경우 피해자가 캡처 사진 등을 고객센터로 보내면 영상 삭제 후 BJ에게 경고를 준다. BJ는 1년 이내에 같은 이유로 경고를 3회 연속 받으면 퇴출된다. 하지만 피해자가 영상 증거를 확보해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논란에도 BJ들의 '헌팅 방송'은 갈수록 인기다. BJ들에겐 인기가 곧 수익이다. 영상에 붙는 광고 클릭 수나 시청자들이 보내는 유료 아이템(일명 별풍선)으로 돈을 번다. 한 BJ는 "인터넷 방송 시청자의 70%를 차지하는 남성 시청자를 끌어모으려고 여성을 이용한 자극적인 장면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