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영국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린 IAAF(국제육상경기연맹)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 결선.

이날만큼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선수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5만6000여명 관중의 시선은 지난 10년간 세계 단거리 육상을 제패했던 우사인 볼트(31·자메이카)에게 쏠렸다. 볼트의 마지막 100m 질주가 끝나자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저스틴 개틀린(35·미국)은 볼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듯한 동작으로 '단거리 황제'의 마지막을 예우했다.

이날 100m 결선에선 팬들이 기대했던 볼트의 역주는 나오지 않았다. 개틀린이 9초92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볼트는 9초94를 기록한 크리스티안 콜먼(21·미국)에게도 밀려 동메달(9초95)에 그쳤다.

우사인 볼트의 단거리 ‘10년 독주(獨走)’가 막을 내렸다. 볼트(왼쪽)는 6일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 결선에서 3위에 그친 다음 우승자인 저스틴 개틀린(오른쪽)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개틀린은 볼트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동작을 취하며 존경을 표했다.

출발 반응 속도 0.183초로 결선 8명 중 7번째로 스타트 블록을 치고 나온 볼트는 막판 뒷심을 발휘했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영국 BBC는 "볼트가 (100m 뛸 때) 그렇게 찡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볼트는 마지막 경기에서 사력을 다했지만 전성기에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이었다"고 평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사인 볼트가 패했다. 가짜 뉴스가 아니다"는 소식을 전할 정도였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2관왕) 때부터 10년 동안 결선에서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에서는 1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한 적이 있지만 결선에 올라 금메달을 놓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이저대회(올림픽·세계육상선수권)에서만 19번 결선에 올라 19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만큼 육상 단거리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단거리 세계 황제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볼트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뛰고 나서 다리가 아픈 건 처음이다. 떠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도 "더 빨리 달리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이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볼트는 이번 100m 동메달로 세계선수권 14번째 메달(금11·은2·동1)을 걸었다. 역시 자메이카 출신으로 슬로베니아로 귀화한 여자 육상의 레전드 멀린 오티(은퇴)와 함께 '최다' 타이기록이다.

볼트의 선수 생활이 늘 화려했던 건 아니다. 12세에 육상에 입문한 그는 2001년 헝가리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과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200m에 출전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선천적으로 휜 척추(척추측만증),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와 골반 등은 스프린터로선 치명적 단점이었다.

2004년 말 자메이카 육상대표팀의 글렌 밀스 코치를 만나면서 볼트의 운명이 바뀌었다.

긴 다리를 활용해 보폭을 2m44㎝ 로 늘리면서 100m를 41걸음 만에 주파하게 됐다. 다른 선수들은 대게 100m를 43~50걸음에 뛴다. 고된 훈련을 이겨낸 볼트는 지난 10년 단거리 최강자 자리를 유지했다.

볼트는 마지막 100m 성적표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늦은 출발이 내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 경기라는 걸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와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은퇴를 번복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렬한 팬인 그는 은퇴 후 축구 선수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세계선수권이 끝나면 폴 포그바(맨유)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파티를 즐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