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30년뒤 내 미래?… 치킨집 창업 게임에 빠진 1020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7.08.07 03:02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기]

    부모 세대의 '퇴직 후 창업', 게임으로 만들어 사회 풍자
    현실선 망해도 게임에선 '대박'… 사이버 공간에서 돌파구 찾아
    자취생 키우기·한국 생존기 게임도

    "대한민국 치킨집 수 총 3만6000개. 퇴직 후 나는 치킨집 창업에 뛰어들었다. 30일마다 임차료를 감당하려면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

    휴대폰 작은 화면 속 한쪽에 흰 닭이 혀를 내밀고 있다. 이어지는 안내문. '당신의 성공적인 창업을 도와드릴 미치닭입니다. 우선 메뉴를 개발하세요!'

    퇴직 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창업에 나선 40~50대들을 주인공 삼은 모바일 게임 '퇴직 후 치킨집'의 시작 모습이다. 은퇴 후 자영업자로 변신한 이들의 애환을 담은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어결치'(어차피 결국은 치킨집) '대끝치'(대기업의 끝은 치킨집)' 같은 신조어가 나올 만큼 치킨 가게는 요즘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지난해 나온 이 게임은 최근 '프랜차이즈 갑질' 등 뉴스와도 맞물려 화제다. 5만6000여명의 사용자가 내려받았는데, 특이하게도 대부분 10~20대다. 독특한 메뉴 개발로 인기 끌기, 홍보 잘해서 인지도 높이기처럼 매출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치킨 중량 속이기' '아르바이트생 시위 막기' '다른 집 루머 퍼트리기' 같은 '네거티브 전략'까지 담았다. 사용자들은 "대출금 갚다가 망했어요" "매달 임차료에 월급까지 꼬박 나가는 게 힘들어요. 결국 파산이에요" "이게 30년 뒤 내 미래인가" 같은 후기를 블로그 등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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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현지 기자

    게임을 개발한 이는 부산의 스무 살 대학생 강성진씨. 3개월 정도를 투자해 게임을 만들었다는 강씨는 "뉴스를 보다 치킨집 창업이 크게 늘었는데 막상 잘되는 자영업자는 많지 않다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프랜차이즈 가맹자 수는 2012년 조사 대비 23% 늘어난 18만1000개로 그중 치킨집이 2만4719개다. 호프집 등 치킨을 겸하는 업체까지 합치면 약 3만6000개다. 특히 2015년 창업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000명인 반면 폐업자는 73만9000명이다.

    치킨집 게임뿐만 아니라 '자취생 키우기' '헬조선 탈출' 게임 등도 인기다. 자취생 키우기 게임은 각종 알바를 전전하며 방값(임차료)을 버는 것이다. 성적을 올릴 것인지, 패스트푸드점 알바 등으로 돈을 벌어 '탈출'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 달동네 단칸방에서 고급 한옥집으로 '신분 상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마주하는 건 '졸업 엔딩' 아니면 '좌절 엔딩'이다.

    취업 준비생이거나 갓 취업한 10~20대 사이에서 아버지 세대의 분투기 같은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이 인기를 끄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인터넷 문화는 자조적인 유희가 바탕이 되는데 최근 들어 10~20대가 만들고 즐기는 인생 게임에서 사회 풍자가 두드러진다"며 "'N 포 세대'로 스스로를 비하하는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현실을 가벼운 놀이로 희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취생' 게임같이 동 세대의 문제나 '치킨집'같이 미래의 일을 '내면화'해서 현실을 꼬집는 적극적인 신호탄으로 보기도 한다. '퇴직 후 치킨집' 제작자 강성진씨는 "현실에선 망하더라도 게임 속에선 '대박'이 날 수 있다"며 "'평생 취준생' '전업백수'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희망도 미래도 없는 세대'라고들 하는데 게임 속에서라도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후기도 많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 세대의 우울한 자화상이 1020세대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사회 비판적인 게임까지 탄생했다"며 "20대의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으로 사회를 풍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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