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장인 A(30)씨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소변 테스트기 사진을 보여줬다. 테스트기에는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나 있었다. 여자친구는 "수고했고, 사랑한다"며 축하해줬다. A씨가 보여준 건 '임신 테스트'가 아니었다. 보건소 금연 클리닉의 '니코틴 테스트' 사진이었다. 임신 테스트에서 '두 줄'은 임신을 의미하지만, 니코틴 테스트에서 두 줄은 니코틴 비(非)검출, 한 줄은 검출을 의미한다. A씨는 "금연 약속을 한 뒤에도 여자친구가 자꾸 '나 몰래 피는 것 아니냐'고 의심해 보건소에 가 '인증'을 받았다"며 "금연은 했지만 '혹시라도 한 줄이 뜨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는데 두 줄이 떠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금연을 바라는 연인이나 배우자, 가족을 위해 보건소에서 '금연 인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굳은 금연 의지를 객관적인 검증 수단을 통해 보이려는 것이다. 금연 시도자들은 "인증 자체만으로 자기 성취감이 들기도 하지만, 눈으로 '증거'를 본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으로 금연 의지가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지난 4월부터 경기 화성시보건소 금연 클리닉에 다니기 시작한 직장인 박갑진(47)씨도 최근 소변 검사를 '두 줄'로 통과했다. 박씨는 "올해 아내와의 19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금연해 아낀 돈으로 일본 가족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했다"며 "소변 테스트를 통과한 후 보건소 선생님이 테스트기를 폐기하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소변 니코틴 검사는 검사받는 사람의 소변에서 코티닌(Cotinine) 성분을 검출해내는 방식이다. 코티닌은 우리 몸이 니코틴을 흡수한 뒤 대사작용을 거치며 생성되는데, 코티닌이 포함되지 않은 소변이 테스트기에 흡수되면 테스트기 내의 염색된 코티닌 항체(抗體)가 소변에 용해돼 제 색깔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두 번째 줄'이 나타난다. 반대로 코티닌이 포함된 소변의 경우 코티닌이 테스트기 안에서 항체와 결합해 색의 발현을 막는다.

금연 인증은 대부분 전국 보건소에서 운영되는 '금연 클리닉' 프로그램에서 받는다. 시중에서 금연 검사 도구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보건소에선 무료이고 프로그램 수료 시 보건소장 명의의 '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6개월 과정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3~5번의 중간 점검과 최종 점검에서 '소변 니코틴 검사', '호기(呼氣·날숨) 일산화탄소 검사' 등으로 금연 여부를 검증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1~6월에 보건소 금연 클리닉에 등록한 사람은 26만 2151명으로 3년 전 같은 기간(19만2315명)보다 36% 늘었다.


아들의 권유로 작년 말 금연 클리닉에 등록했다는 박성민(60)씨는 "프로그램 도중 '딱 한 대는 괜찮겠지'란 마음에 담배를 피웠는데 보건소 선생님이 소변 검사 결과를 보더니 흡연 시점까지 딱 맞춰 놀라고 부끄러웠다"며 "그 후 마음을 다잡고 독하게 금연해 최근 수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인증이 '장기간 금연'까지 보증해주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소변 니코틴 검사는 최근 1~2주의 흡연 여부만을 판정해줄 뿐이고, 입으로 불어 테스트하는 '일산화탄소 검사'의 보증 기간은 약 24시간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하고 잦은 검증이 필수적이다. 최근 서울 노원보건소 등 일부 보건소는 6개월 전 흡연까지 잡아낼 수 있는 모발 검사를 독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관계자는 "작년부터 보건소에서 금연 검증을 할 땐 흡연자 본인의 '자가 보고' 말고 반드시 과학적 기구를 이용하라는 권고 지침이 시행 중"이라며 "지침 시행 전엔 50%에 육박하던 금연 성공률이 30% 이하로까지 하락했지만, 그만큼 보건소가 보증하는 금연이 좀 더 공신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