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04 03:02

    환각 등 부작용 있는 마약 성분… 병원들, 상담 3분하면 처방해줘
    "알아서 양 조절" 책임 떠넘기고 "하루치 무료 제공" 판촉하기도
    식약처 권고 있지만 제재 한계

    "정부에선 안 된다는 거를 처방해주는 거니까 나중에 원망하면 안 돼요."

    3일 본지 취재진이 서울 서대문구 한 비만 치료 병원을 찾아가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하자 이 병원 A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A 원장은 마약류 성분이 든 다이어트 약을 처방하면서 "한 알 먹어서 너무 어지러우면 반 알씩 먹는 식으로 알아서 양을 조절하라"고 했다. 3분여 동안 키, 몸무게, 식욕 억제제 복용 여부 등 간단한 물음에 답하자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인 펜타민 등이 든 다이어트 약 2주치 처방전이 나왔다.

    비만·저체중 여부는 가리지도 않았다. 취재진은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MI)가 약 17로 저체중에 해당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 성분 식욕 억제제는 BMI가 30 이상인 경우 4주 이내 단기간 처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다이어트 약 공급 5년 새 2배 늘어

    노출의 계절인 여름을 맞아 다이어트 약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일부 병원에서 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다이어트 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포털에 '다이어트 약'을 검색했더니 다이어트 병원, 비만 클리닉, 비만 한의원 등 수십곳이 나열됐다. 이 중 일부 병원에 전화해 보니 별다른 신상 정보를 묻지 않고 당일 다이어트 약 처방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루치 다이어트 약을 무료로 제공할 테니 효과를 보면 재구매하라고 판촉을 벌이는 곳도 있었다. 판매하는 다이어트 약 일부는 부작용 우려 때문에 해외에선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다. 유럽의약품청(EMA)은 2000년 펜타민·디에틸프로피온 성분을 금지했고, 2013년 로카세린 성분도 금지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약국 약사는 "손님이 들고 오는 식욕 억제제 처방전 80%는 향정신성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이라며 "아무래도 다이어트 효과가 크기 때문에 자극적인 약을 많이 처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년간 다이어트약 판매 현황 그래프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 퀸타일즈IMS에 따르면 국내 다이어트 약 판매액은 2012년 552억원에서 2016년 928억원으로 5년 새 80% 늘어났다. 시중에 많이 팔리는 벨빅(로카세인), 디에타민(펜타민) 판매액도 매년 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향정신성 식욕 억제제 성분 공급량은 2010년 1억3252만정에서 2015년 2억2441만정으로 70%가량 늘어났다. 식약처 관계자는 "다이어트 시장이 커지면서 올해는 공급량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장기 복용하면 건강에 위험해

    식약처 안전 복용 가이드는 마약 성분이 든 다이어트 약의 경우 4주 이내 단기간 처방을 원칙으로 최대 3개월까지 처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6개월째 다이어트 약을 복용 중이라는 권모(55)씨는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얼마든지 처방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는 의약품 성분을 얼마나 처방받았는지 알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의사가 이를 무시하고 처방하는 경우 이를 제재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식약처는 "내년 5월부터 마약류 유통을 추적하는 통합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욕 억제제 성분을 3개월 이상 복용하면 폐동맥 고혈압 위험이 23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마약류 성분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불안, 환각, 불면증 증세가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중독에 이르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정해진 복용량을 지키지 않거나 우울증 약 등과 함께 복용해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강재헌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향정신성 성분이 든 다이어트 약은 대부분 비급여라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부작용 위험이 큰 약품에 대해선 별도로 추적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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