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수교史

에티오피아, 한국식 국가명 표기법에 화낸다는데

우리나라는 세계 190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외교부 '2016 외교백서' 기준).
이들 국가와의 정식 수교 전후로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을까? 또한, 현재 외교 관계는 어떨까?
우리나라와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국가별 수교 역사를 알아보자.

    • 구성 및 제작= 뉴스큐레이션팀 이시연

에티오피아, 한국식 국가명 표기법에 화낸다는데

  • 구성 및 제작= 뉴스큐레이션팀 이시연
입력 2017.08.21 08:59 | 수정 2017.09.06 09:49


에티오피아는 최근 10여 년간 연평균 8~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급격한 경제 성장 뒤에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있다. 한국식 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한다는 이 국가, 에티오피아와 만남은 6·25전쟁 때부터 시작한다.


6·25전쟁 때 지상군 파병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부대 /조선DB(주한미군 제공)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1951년 그때만 해도 왕정 시대였던 에티오피아는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의 결정에 따라 황실 근위대이자 최정예 부대 '칵뉴(Kangnew)'를 한국으로 파병했다. 칵뉴란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적을 격파하라'는 의미로, 셀라시에 황제가 직접 명명한 부대명이었다. 칵뉴 대원들을 태운 배가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기까지 3주가 걸렸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에 총 6037명을 파병해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강원도 춘천·철원 등 중·동부 전선에서 총 253차례의 전투를 치렀는데, 단 1명의 전쟁포로도 없이 모두 승리했다. 휴전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 70세~90세가 된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들은 "죽기 전에 한국에 가 하얀 눈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며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 한국 오겠다"는 약속 못 지킨 황제

1968년 5월 18일 조선일보 보도 캡처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23일자로 에티오피아와 공식 수교를 체결하고, 양국 간 대사급 외교사절을 교환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춘천에 에티오피아 칵뉴 대대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참전기념탑을 세웠다.

셀라시에 황제는 1968년 5월 18일 참전기념탑의 준공식에 맞춰 방한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의 수행을 받던 셀라시에 황제는 춘천 공지천변을 둘러보던 중 "이곳에 에티오피아 문화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에티오피아산 원두커피를 파는 '이디오피아 벳(집)'이 문을 열어 4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좌) 1968년 5월 18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우) 2008년 6월 24일 춘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탑을 찾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 /조선DB

이디오피아 벳은 셀라시에 황제가 원했던 상호였다. 셀라시에 황제는 상호를 지어주면서 박 전 대통령에게 한국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1974년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돼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됐다. 에티오피아에서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Mengistu Haile Mariam)이 지휘하는 군부세력에 의해 왕정이 붕괴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됐다.

한편, 이디오피아 벳은 한국식 국가명 표기법인 에티오피아를 따르지 않는다. 주소 역시 춘천시 이디오피아길 7이다. 이디오피아 벳의 주인인 조수경씨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왜 나라 이름을 멋대로 바꾸느냐'며 화를 낸다"면서 그 이유를 밝혔다.

이디오피아 벳 뒤편에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춘천시와 아디스아바바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문화교류를 이어오던 중 춘천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건립했다. 참전기념관의 독특한 외형은 에티오피아의 전통가옥 양식을 따온 것이다.


1991년 이후 참전에 대한 보은성 지원

(좌)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촌 입구, (우) 가슴에 무공훈장을 달고 있는 참전용사들 /조선DB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의 외곽에 있는 일명 '코리아 빌리지'는 빈민촌 중에서도 손꼽히는 빈민촌이다. 이곳에는 6·25 참전용사들이 모여 산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군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참전용사들은 숙청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났고, 연금도 끊겨 생활이 어려워졌다. 처음 코리아 빌리지를 형성할 때는 2000여 명의 참전용사들이 정착했으나 지금은 150여 명만이 남아있다.

사회주의 정권 17년간 우리나라와 관계도 소원했다. 사회주의 정권의 지도자였던 멩기스투가 물러난 뒤에야 우리나라는 에티오피아에 6·25 참전에 대한 보은으로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1991년부터 2014년까지 공적개발원조(ODA)* 명목으로 총 8861만 달러를 지원해 식수 개발, 초등학교 건립, 의료·보건 사업 등을 추진했다. 이밖에 춘천시가 국비와 모금으로 6·25 참전용사회관을 건립하거나 기업 차원에서 복지회관을 준공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하는 이들도 있다.

** 공적개발원조: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하는 무상 원조로, 정부개발원조라고도 한다.


한국 정상 최초로 에티오피아 방문한 MB

(왼쪽부터) 2011년 7월 8일~11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총리와 정상회담, 가레 아레라 마을에서 봉사활동, 참전기념비에 헌화했다. /조선DB

지난 2011년 7월 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를 순방했다. 우리나라 정상 중 에티오피아를 국빈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에티오피아의 참전에 대해 사의를 표하고, 5개년 경제개발 계획 등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을 공유할 것을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멜레스 총리는 이 전 대통령에게 따로 부탁을 하나 했다. 에티오피아 현지 대학생들에게 "이 전 대통령이 살아온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아디스아바바 대학 연설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길게 들려줬다. 또한, 마을 시설 건축 등 봉사활동과 의료봉사단원들 격려, 6·25 참전기념비 헌화, 참전용사들과 간담회 등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48년 만에 아버지 사진 건네받은 박근혜

이 전 대통령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해 5월 26일 에티오피아를 국빈 방문해 하이을러마리얌 더살런(Hailemariam Desalegn Boshe) 총리와 정상회담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 인근에 100만㎡ 규모의 한국 섬유 단지를 조성하는 산업단지 협력 양해각서(MOU)와 7억달러 규모의 도로·건설·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교통 협력 MOU 등을 체결했다.

(왼쪽부터) 지난해 5월 26일~28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총리와 정상회담, 에티오피아 대통령궁에서 방명록을 남겼다. /조선DB

특히, 박 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에티오피아의 지지를 끌어냈다. 하이을러마리얌 총리는 "한반도 불안정을 초래하는 북한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에티오피아는 한국과 같은 편"이라고 밝혔다. 사회주의 정권 시절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에티오피아로부터 북핵 문제 공조에 의견을 같이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의의가 있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6·25 참전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48년 전 선친(先親) 박정희 전 대통령과 셀라시에 황제가 함께 찍은 사진 액자를 선물로 받았다. 멜레세 테세마(Melese Tessema) 참전용사회장은 선물을 건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께서 경제부흥을 위해 노력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며 인사했다.


에티오피아 중심에서 한국 車 파는 마라톤 영웅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2008년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3분59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2011년 '마라톤 모터스'라는 이름으로 8층짜리 현대자동차 에티오피아 대리점을 신축했다. /조선DB

200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마의 2시간 4분대의 벽을 깨뜨려 전설적인 마라토너가 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Haile Gebrselassie)씨가 아디스아바바 시내 8층짜리 신축 건물에서 현대자동차를 팔고 있다. 지난 2009년 현대차 대리점 계약을 따낸 이래로 8년째다. 게브르셀라시에씨는 에티오피아에서 마라톤 영웅으로,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신뢰받고 있다.

그는 현대차를 파는 이유에 대해 "한국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보며 사람들이 놀랍다고 말한다"면서 "현대차와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요타 판매량 넘겠다" 에티오피아 '마라톤 영웅'

에티오피아, 새마을운동 배우지만… 한국에선 여행위험국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간 총 무역 규모는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약 180억 달러다. 이 가운데 에티오피아의 무역 규모는 2억 993만 달러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에티오피아에 주로 석유·화학제품, 건설중장비, 자동차, 의약품 등을 수출하고, 에티오피아로부터 커피, 참깨 등을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가 개발협력*을 구상하는 거점이자 아프리카 내 우리나라 정부의 무상원조 1위 국가다. 우선, 에티오피아 정부는 한국식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을 개발하려고 한다. 고위급 '새마을연수단'을 꾸려 우리나라에 파견하는 것도 새마을운동을 가까이서 배우는 데 목적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에티오피아는 여행경보 1단계인 '여행유의' 또는 3단계인 '철수권고' 국가다. 에티오피아에는 종교 문제와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으로 항시 테러 위험이 있어서다. 적대국 에리트레아(Eritrea)와 소말리아(Somalia)의 접경지인 아파르(Afar), 소말리(Somali) 지역이 철수권고에 해당한다.

** 개발협력: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과 복지 향상을 위한 원조와 민간자금 지원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용어.

** 외교부의 여행경보는 여행유의→ 여행자제→ 철수권고→ 여행금지 순으로 단계가 구분된다.

□ 그래픽 이은경

□ 참고 외교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