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솔거노비' 공관병은 왜 생겨났을까

입력 2017.08.03 11:45 | 수정 2017.08.03 15:36

박찬주 육군 2작전사령관(대장)이 1일 군(軍)에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 군 인권센터 등을 통해 제기된 ‘부인 갑질’ 의혹들을 사실상 인정하고 이를 책임지기 위해 전역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박 장군 부인은 관사에서 근무하던 공관병에게 바닥에 떨어진 손발톱과 각질을 치우게 하고 휴가나온 아들 속옷 빨래를 시키는 등 사사로운 일을 떠맡기며 횡포를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군문에 발들인 적 없는 분들은 이번 사건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짬밥에 숟가락 대 본 경험 있는 분들에겐, 당번병은 외거노비(外居奴婢), 공관병은 솔거노비(率居奴婢)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그저 군에 있을 때는 문제를 제기할 입장이 못되고, 전역 후엔 상관할 바가 아닌지라 침묵했을 뿐이다.
/편집=문현웅 기자
/편집=문현웅 기자
하지만 이런 보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던 분이라도, 풍문 수준을 넘어 자세히 아는 경우는 드물 게다. 본인이 직접 당번병이나 공관병으로 근무하지 않은 한 말이다. 이왕 사건도 터졌고 하니, 이 기회에 당번병과 공관병이 얼마나 오래 뿌리박힌 군대 풍습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이들의 군 생활에 대해선 다수 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주고 있으니, 역사 위주로만 짚어보도록 하겠다.

#공관병
야전에서 근무하는 장군이나 제독에겐 단독주택 형태 숙소인 공관(公館)이 제공된다. 이 공관을 관리하는 병사가 바로 공관병이다.

공관병 보직이 처음 탄생한 시점을 정확히 가늠하긴 어렵지만, 정황상 추측은 가능하다. 원태재 재향군인회 홍보실장(전 국방부 대변인)은 “고급 장교 관사, 즉 공관은 최소한 국군 주력이 국경쪽에 배치되던 시기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민간인에게 관사 관리를 맡긴 적은 없다”며 “공관 설치와 동시에 공관병 보직이 생겼으리라 짐작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전방 부대 중 하나인 제1야전군사령부는 1953년 12월 15일 창설됐다. 늦게 잡는다 해도, 최소 이 시기 즈음부터는 공관병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공관병이 꼭 필요한 보직인지는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였다. 공관병 임무는 ‘식모’(食母)로 거의 대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식모란 주인집에서 먹고 자며 집안일을 해주는 어린 여성으로, 60~70년대엔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봉급을 받지 않았고, 시집갈 때 주인집에서 세간이나 몇 개 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입 하나 줄일 셈으로 딸을 내보내는 일이 많았던 통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무튼 장군이나 제독씩이나 되는 사람이 식모 하나 들일 여유조차 없을 리는 만무했다. 집까지 대외비 보안문서를 가져갈 리 없으니, 군 기밀 유출 위험을 핑계 삼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공관병 제도는 쭉 명맥을 유지했다. 물론 군부대가 있는 오지 쪽에선 식모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한들 공무 수행중인 병사를 사적으로 쓰는 사정이 참작될 리는 없다.

식모가 사라지고 파출부와 가사도우미가 자리를 그 자리를 대신한 시절에도 달리 변한 건 없었다. 명문대 출신 공관병을 자녀 과외교사나 대학원 재학 중인 장군님 과제·논문 셔틀로 써먹은 게 쏠쏠해 제도 유지에 힘이 실렸다는 풍문이 전설처럼 구전(口傳)될 뿐이다. 심지어 “우리 아들을 공관병으로 써달라”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고된 훈련에서 ‘열외’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에 사건이 터진 덕에 모두가 알게 됐듯, 2017년 현재까지도 공관병은 존재한다. 여담으로 군 복무를 하다 보면 장군 딸과 병사가 눈 맞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 소문 주인공 대부분이 공관병이다.

#당번병
당번병은 병영 내에서 지휘관급 장교를 수발드는 병사다. 지난 1956년 벌어진 김창룡 암살사건과 관련해 강문봉 중장이 배후로 지목됐고, 이와 관련해 강 장군의 운전병과 당번병이 심문을 당했다는 기록이 그 해 발행된 신문에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당번병 역시 공관병 못지않게 역사가 오랜 보직인 듯하다.

원 실장은 “당번병은 독립 후 창군(創軍)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위협에 맞서 군 주력 대부분이 국경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을 후방에 둔 고급 장교들이 생활에 불편이 많아 당번병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만 현재까지도 정식 편제로 남아있는 공관병과는 달리, 당번병은 장성급 미만에선 공식적으로는 사라진 지 꽤 된 자리다. 대법원이 1986년 내린 ‘여우고개 사건’ 판결이 결정타였다는 게 통설이다.

어느 날 자정, 중대장 영외 관사 당번병이던 A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중대장 부인이었다. 그녀는 A씨에게 우산을 들고 마중나와 달라 부탁했다. 비가 오고 밤이 늦어 혼자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함께 나간 중대장은 어디 두고 혼자 오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당번병이라면 상관 부인 지시에도 따라야 한다 생각했다. 그리하여 A씨는 1.5㎞가량 걸어나가 중대장 부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중대장이 A씨를 군사재판에 넘겼다. 죄목은 무단이탈이었다. 지휘관인 본인 허락 없이 근무지를 벗어났으니 탈영이라는 논리였다. 중대장이 부인과 당번병 사이 불륜관계가 있었을 거라 의심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하여튼 A씨는 대법원까지 가서야 무죄를 선고받는다. A씨는 중대장 부인 마중도 당번병 임무라 믿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중대장이 워낙 A씨를 사적으로 부려 먹었던 통에 착각할 만도 했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이것이 ‘여우고개 사건’의 전말이다.

아무튼 이 판결로 인해, 당번병은 공적 임무와 사적 임무를 구분하게 되기 어려울 정도로 부려 먹히는 보직이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정부가 병사의 사병화(私兵化)를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오래지 않아 장군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독립 여단급 부대 미만에서 당번병 TO가 사라지게 된다.

물론 이 사건 하나 때문에 당번병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앞서 1962년 소대장 박모(28) 중위가 동성애 관계던 자신의 당번병 김모(20) 일병을 살해하고 자살한 건이나, 1972년 당번병으로 복무 중이던 대기업 사장 아들이 병영을 떠나 6개월간 여배우와 동거하다 적발된 사건 등 창설 이래 소동이 끊이지 않던 보직이었다. 군 입장에서도 마냥 내버려두긴 어려웠을 게다.

#개혁에 나선다지만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방부 한 관계자는 “송영무 장관이 공관 근무 병력을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면서 “현재 국방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1일 밝혔다. 다시 말해, 공관병을 아예 없애겠다는 소리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나섰다 한들, 공관병이 쉽사리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번병 또한 제도상에선 장성급이 아닌 이상 이미 사라진 편제다. 하지만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현역이 알고 예비군이 알듯, 현시대 군대에도 연대급 이하 부대 소속 당번병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대장 제2통신병’ 등으로 신분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참고로 글쓴이가 복무하던 부대엔 주임원사 통신병까지 있었다.

제도를 지우기는 쉽지만, 관행을 없애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한두 해짜리 설익은 관행도 아니고, 건군 이래 반세기 넘도록 묵혀온 폐습이다. 병사를 몸종 내지 노예로 보는 군의 태도부터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해결은 요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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