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 개의 오렌지' 찾아나선 유쾌한 100분

    입력 : 2017.07.31 03:18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
    프로코피예프 오페라 국내 초연… 왕궁·마녀의 성 등 종횡무진 연주

    왕자(테너 안드레이 일류쉬니코프)의 입에선 썩어빠진 라임 냄새가 난다. 우울증에 빠져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그럴 만하다. 유일한 치료제는 웃음. 하지만 발을 헛디뎌 우스꽝스럽게 넘어진 마녀(소프라노 예카테리나 시마노비치)를 보고 뜻하지 않게 웃어버린 왕자는 세상 끝까지 가서 세 개의 오렌지를 찾아야 하는 저주에 걸린다. 문제는 오렌지가 끔찍한 구리 국자를 든 거인 요리사에게 있다는 것. 왕자는 요리사의 관심을 빼앗기 위한 마법 리본을 지니고 의연하게 사막을 건넌다. 오케스트라의 활기찬 스케르초(해학적 기악곡)가 왕자의 앞날을 축복한다.

    지난 29일 저녁 강원도 평창대관령음악제의 뮤직텐트(1300석)는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으로 달아올랐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이 음악제(예술감독 정명화·정경화)의 저명연주가 시리즈 네 번째 무대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베네치아 극작가 카를로 고치의 동화를 바탕으로 1921년 12월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선보인 오페라가 96년 만에 한국에서 초연된 것이다.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세 개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유머 넘치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희비극을 오가는 아리아와 춤곡을 중후하게 표현해낸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29일 평창에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국내 처음 연주됐다. 조르벡 구가예프가 지휘한 이 오페라는 1시간 40분 동안 상상 속 왕궁과 사막, 마녀의 성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오갔다.
    지난 29일 평창에서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국내 처음 연주됐다. 조르벡 구가예프가 지휘한 이 오페라는 1시간 40분 동안 상상 속 왕궁과 사막, 마녀의 성을 유쾌하고 발랄하게 오갔다. /평창대관령음악제

    러시아 정상급 교향악단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전속가수 14명이 처음 내한해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줬다. 오케스트라는 일주일 전 독일 바덴바덴에서 예술감독인 명(名)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로 조성진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고 곧장 평창으로 달려왔다.

    러시아의 젊은 지휘자 조르벡 구가예프(31)는 지휘봉 없이 두 손만으로 악단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음악에 밀고 당기는 힘이 있어 무대장치가 따로 없는 콘서트 형식인데도 분위기 전환이 뚜렷했다. 고초 끝에 세 개의 오렌지를 손에 넣은 왕자는 별생각 없이 껍질을 깠다가 니네타 공주가 나타나자 바로 사랑에 빠진다.

    공연 전 만난 구가예프는 "평창에 오기 전 게르기예프에게 조언을 구했으나 '잘해봐(Good luck)!'라고 말해준 게 전부였다"며 웃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2015년부터 마린스키 극장에서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는 그는 외삼촌인 게르기예프에게서 열여섯 살 때 처음 지휘를 배웠다. 게르기예프의 조카지만 나이답지 않게 핵심을 짚어내고 표현력이 풍부해 악단의 신임을 얻었다는 평이다. 이날도 구가예프는 오케스트라와 성악가, 국립합창단 등 100여명을 아우르며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환상적 색채를 만화경처럼 다채롭게 그려냈다.

    전날인 28일 저녁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와 미국 피아니스트 스티븐 코바체비치(77) 듀오가 들려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도 호응이 좋았다. 25년 만에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소릿결이 사뭇 달랐다. 화려하고 뜨거운 바이올린과 솔직하고 차분한 피아노의 어우러짐이랄까. 삶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겪어본 시인들이 이젠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나지막이 읊는 시처럼 깊은 맛이 났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해발 700m 대관령 고원에서 펼쳐진다. 선선한 날씨와 아리따운 들꽃으로 뒤덮인 스키 슬로프, 그 안에서 맘껏 기량을 뽐내는 스타 연주자들로 해마다 사랑받는다.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저명연주가 시리즈(총 13회) 역시 매회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러시아 거장의 명작을 구현해낼 올해 음악제는 8월 8일까지 계속된다. (033)240-1363 www.gmmf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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