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돌고래·까치도 거울 테스트 통과했다

조선일보
입력 2017.07.29 03:00

동물행동학 석학 드 발 교수 신작, 문어·곰치도 "똑똑하다" 입증
인간중심주의가 동물 경시 불러… 개별 생명체 특성·장점 이해해야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프란스 드 발 지음|이충호 옮김
세종서적|488쪽|1만9500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사다리(scala naturae)' 개념을 내놨다. 사다리 꼭대기에는 신(神), 다음에는 인간, 그리고 포유류 등을 지나 맨 아래 계단에는 연체동물을 뒀다. 자연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이래 후대의 학자들도 각자의 이유로 인간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도구를 쓰기 때문(호모 파베르), 놀기 때문(호모 루덴스), 정치적이기 때문(호모 폴리티쿠스) 등. 고도화된 인간의 언어도 주요 논거였다. 그런데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침팬지가 보여주는 정치적 행동과 인간의 정치적 행동의 차이는 단지 노골성뿐"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펼쳤던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69)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과 석좌교수의 신작이다. 네덜란드 출신 미국국립과학원 회원인데, 1982년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을 통해 '동물에게 인지(認知·cognition) 능력이 있고 침팬지 사회에도 정치적 행위가 이뤄진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동물에게 인지 능력이 없다고 본 학계 주류 이론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의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졌고, 일흔을 앞둔 동물행동학 대가(大家)는 이번 책에서 전공 분야인 영장류뿐만 아니라 문어·돌고래·까마귀·코끼리 등 광범위한 종의 최신 연구 결과를 망라한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던 요소들이 사실 동물도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며 현대 과학의 다양한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거울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인도 코끼리. 최근 코끼리와 돌고래도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인간은 생후 18개월부터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
거울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인도 코끼리. 최근 코끼리와 돌고래도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인간은 생후 18개월부터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 /유튜브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좁은 원통형 물병 속 물 위에 떠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 물병 옆에 있는 자갈돌을 집어넣어 수위(水位)를 높이고는 먹이를 부리로 낚아챈다. 비슷한 실험을 네 살짜리 아이에게 시켜봤다. 8%만 성공했다. 인간에게도 어려운 문제를 까마귀가 자갈이라는 도구를 써서 해결한 셈이다.

문어나 곰치·돌고래 등도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발을 디딘다. 그들은 자의식을 갖고 있거나, 놀이를 하거나, 문화를 형성하거나, 서로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 자기 인식 능력을 갖췄다는 근거가 되는 '거울 테스트'를 인간과 대형 유인원만이 통과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 돌고래·코끼리·까치 등이 여기 합격하면서 자의식을 가진 동물 대열에 들어섰다.

침팬지 아유무는 0.2초 만에 모니터에 뜬 숫자 위치를 기억해냈다. 인간보다 빠르다.
침팬지 아유무는 0.2초 만에 모니터에 뜬 숫자 위치를 기억해냈다. 인간보다 빠르다. /교토대
침팬지가 뇌물·야합·타협 같은 정치적 행동을 벌인다는 것은 전작에서 증명했다. 이번에는 유인원도 인간의 권력관계를 이해한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인간의 언어는 몰라도 비언어적 의사소통만으로 상하 관계를 파악해냈다. 사육사 사이에서 '우두머리'라고 판단한 사람이 등장하면 침팬지 우두머리가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소리를 냈다.

동물은 때로 인간보다 뛰어난 모습도 보인다. 일본 교토대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 아유무는 0.2초 만에 1~9까지 무작위로 컴퓨터 스크린에 배치된 숫자 위치를 기억하고, 순서대로 가리킬 수 있는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반문한다.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라고.

과학계가 인간 중심주의 때문에 동물을 '우습게' 봤다는 지적이다. 이 편견은 1970년대까지 공고했다. 동물은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감각 기관을 발달시켰다. 그런데 인간은 이들에게 어디까지나 인간 관점에서 디자인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코끼리가 도구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먹이를 앞에 둔 코끼리는 코로 막대를 집어들고 이용하면 먹이를 먹을 수 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후각에 크게 의존하는 코끼리는 코로 막대를 잡는 행위에 거부감을 가진다. 코끼리는 다른 실험에서 상자를 발로 옮겨서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물에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동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지적이다. 그는 "인간이 지능이 높다고 생각했던 동물은 단지 더 순종적인 동물이었다"고 꼬집는다. 거친 비유를 해본다. 중국집에 가서 비빔밥이나 돈가스덮밥을 시키고 맛이 없다고 주방장을 타박하는가. 저자는 일부 연구가 그런 식이었다고 지적한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이 집이 잘하는 음식'을 구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인간은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드 발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만 동물 각각의 생태를 제대로 이해해야 제대로 관찰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책에 언급한 실험 중 붉은털원숭이와 침팬지 비교 사례가 인상적이다. 두 종에게 각각 촉각에 의지해 두 가지 형태의 물건을 분류하는 실험을 시켰다. 뜻밖에 IQ가 더 높다고 알려진 침팬지의 과제 수행 성적이 붉은털원숭이보다 현저히 낮았다. 문제가 너무 쉽다 보니 지루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인간 사회의 획일화된 평가에 대한 흥미로운 문제 제기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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