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마친 뒤 병원행…]

27일 법원이 박근혜(65) 전 대통령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共犯)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앞으로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검찰은 지난 4월 박 전 대통령을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게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은 기소 시점이 달라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30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정 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고 발언했다. 검찰은 이 발언이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의 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들과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게 "정부에 비판적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하면서 블랙리스트 작성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판결에 대한 설명 자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나 문체부 보고서를 통해 내용을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지만, 증거들을 종합해도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범행을 지시 또는 지휘해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쓴 박 전 대통령의 발언 정도로는 직접적으로 지원 배제를 지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단순히 보고만 받은 것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결국 블랙리스트를 기획하고 총지휘한 사람은 김 전 실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향후 자신의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혐의에 대해서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게 됐다. 김 전 실장 등에 대한 판결문과 재판에서 제출된 증거·기록들은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증거로도 쓰일 수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61)씨에게 불리한 문체부 감사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노태강 전 체육국장(현 문체부 2차관)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에 대해선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위법한 지시'를 이행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자의에 반해 사직하게 했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전 국장을 쫓아내라고) 지시해 (김종덕 전 장관 등과) 공범 관계가 성립한다"고도 밝혔다.

'블랙리스트' 문제나 '노태강 사직 강요'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받고 있는 18개 혐의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문제가 박 전 대통령의 형량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긴 어렵다. 박 전 대통령 혐의 가운데 핵심은 삼성과 롯데로부터 592억원대 뇌물을 받거나 요구한 혐의이기 때문이다.

한편 블랙리스트 사건 1심까지 마무리되면서 특검·검찰이 기소한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41명 중 절반 이상인 24명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다. 완전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