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에게 새삶 주고간 아들… 자식 4명 얻었죠"

    입력 : 2017.07.28 03:04

    [박대범씨, 뇌사 아들 장기 기증 "아들도 원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내 장기 기증해라" 늘 당부했지만 아들 기증은 이틀 밤새워 고민
    이식 기다리다 매일 3.2명 사망… 뇌사자 1명, 최대 9명 생명 구해

    지난 25일 인천 송현동에서 만난 박대범씨가 한 달 전 숨진 첫째 아들의 주민등록증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고 있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아들 사진이다.
    지난 25일 인천 송현동에서 만난 박대범씨가 한 달 전 숨진 첫째 아들의 주민등록증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고 있다. 그가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아들 사진이다. /고운호 기자

    "아들도 원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장기를) 이식받은 분들이 오래 살아주면 좋겠어요."

    인천 동구에 사는 박대범(56)씨는 한 달 전 아들 병민(26)씨를 잃었다. 친구와 강원도 여행을 떠난 아들이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인근 병원에서 "대동맥 혈관이 파열되기 직전"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들은 헬리콥터로 서울아산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하지만 의료진 응급 처치를 받기도 전에 대동맥이 터져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박씨가 병원을 찾았을 때는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들 잃고 자식 네 명 얻었다"

    30여년 화물차 운전기사로 일한 박씨는 지난 2009년 선종(善終)한 김수환 추기경이 사후 각막 기증 서약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족에게도 "우리가 죽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장기를 베풀고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그해 막상 아내가 숨졌을 때 박씨는 망설이다 끝내 장기 기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박씨는 두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내 장기를 기증해라"고 수시로 당부했다.

    그러다 지난달 큰아들 병민씨를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박씨는 "이번에도 장기 기증 결정이 쉽지 않았다. 둘째 아들(병현·23)과 이틀을 밤새워 고민했다"고 한다. 평소 박씨의 장기 기증 당부를 잊지 않은 둘째 아들이 "형도 아버지 결정을 존중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장기 기증을 결심하기 전날, 박씨는 병실에서 뇌사 상태인 병민씨에게 말했다. "네가 먼저 갈 줄은 몰랐구나. 아픈 사람들에게 (네 장기를) 나눠주려 한다. 지금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뿐인데, 이해하지?"

    숨진 병민씨는 환자 4명의 목숨을 살렸다. 서울아산병원은 그의 간과 췌장, 신장(2개), 안구를 기증받아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마쳤다. 박씨는 "아들 장기를 받은 사람들은 비록 얼굴도 모르지만 전부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라며 "아들 한 명을 잃고 자식 네 명을 새로 얻었다"고 했다. 정부는 장기 기증 이후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증자와 이식자가 직접 만나는 일은 제한하고 있다.

    매일 3.2명 이식 못 받아 숨져

    최근 5년간 장기 기증 뇌사자 수 그래프

    우리나라에서 장기 기증을 서약한 사람은 2016년까지 131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막상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유족 반대 등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뇌사자 장기 기증은 인구 100만명당 11.3명으로, 일본(0.2명)·중국(2명)보다는 많지만, 스페인(39.7명)·미국(28.5명)보다는 훨씬 적은 수준이다.

    최기호 질병관리본부 장기기증지원과장은 "죽어서도 신체를 훼손하는 걸 불효라고 생각하거나 훼손 자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며 "본인이 장기 기증을 희망했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이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뇌사 상태에 빠져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도 장기 기증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와 달리 뇌사 판정을 받으면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하고, 2주에서 한 달 이내에 대부분 숨진다.

    지난해 현재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4611명이지만, 지난해 뇌사자 기증자는 573명이었다. 기증 건수가 적다 보니 대기자가 이식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평균 1185일이나 된다. 그나마도 끝내 이식받지 못하고 숨지는 사람이 2012~2016년까지 5789명이었다. 하루 평균 3.2명씩 숨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뇌사자 한 사람이 장기 기증을 결심하면 심장·폐·간·신장·소장·췌장·췌도·각막 등 최대 9명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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