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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영화 '군함도'에서 보고 싶어한 것은 탈출이 아니다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입력 : 2017.07.28 04:00 | 수정 : 2017.07.28 16:04

    군함도는 '지옥섬', '감옥섬'이었다

    해저탄광으로 개발된 하시마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전세가 불리해져 일본인이 거의 떠난 후에도 석탄 채굴 일을 계속 해야 했다. 그들이 하시마를 떠날 수 있게 된 건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였다. 원폭 현장을 청소시키려고 나가사키로 또다시 끌려간 것이다. 최대 900여명으로 추정되는 하시마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현재 6명 정도가 생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지옥섬' 하시마, 군함도의 진실이다.

    영화 '군함도'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판타지'에 가깝다. 이토록 치열하고 필사적인 탈출극은 실제 벌어지지 않았다. 역사극이라 불리는 이 영화에는 사실 류승완 감독의 열망이 더 담겼다. 한창 나이에 고향과 생이별하고 망망대해 '감옥섬'에 갇혀 극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나가야 했던 젊은이들이 너무 안타까워, 영화에서나마 그들을 탈출시키고 싶은 열망 말이다.

    영화 '군함도' 스틸

    열정과 전문성으로 세워진 영화 속 군함도의 위용

    따라서 영화 '군함도'의 형식은 역사적 고증이 제법 철저할 지는 몰라도 스토리까지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면 꽤 곤란하다. 일단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군함도'를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 속 군함도는 실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진 거대 세트로 일단 첫인상에서 관객을 압도한다. 또한 해저 탄광의 검은 공기와 열기, 시도 때도 없이 새어나오는 가스의 위력 등 생지옥과 다름 없는 당시의 환경도 아주 실감나게 재현되었다.

    이젠 40대 중반이지만 류승완 감독의 청년 같은 열정은, 내로라 하는 스타 배우들에게 훈도시만 입힌 채 열연을 펼치게 독려하였고 스태프들도 이러한 열정에 화답하여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군함도'다. 이미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이 거대 프로젝트는 류승완이라는 열정적 리더의 명성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은 한껏 기대감을 키우고 있었다.

    영화 '군함도' 속 해저탄광 갱도의 모습

    탈출극 영화로서 '군함도'는 빼어난 수작

    시사회가 끝난 후 신작에 대해 궁금해 하는 주변 사람들이 내게 '영화 어땠냐'고 묻는 일이 종종 있는데, '군함도'는 아마도 가장 많은 질문이 쏟아졌던 영화일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 '군함도'를 관계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영화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에 대해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앞서 말했든 '군함도'는 하시마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일련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배신과 분열 등 갖은 고초를 겪은 뒤에 처절한 사투 끝에 마침내 섬을 탈출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영화 안에서 최대치로 뽐내며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사실 탈출극 영화로서 영화 '군함도'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선과 악이 뚜렷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점점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람들의 관계도 복잡해지면서 풍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탈주의 스케일도 액션영화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스펙터클하게 묘사해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만듦새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군함도'를 기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담기길 바랐던 '뭔가'가 빠져있다는 게 문제였다.

    영화 '군함도' 스틸

    탈출극을 넘어서는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영화 '군함도'에서 그저 단지 빼어난 '탈출극'을 원했을까. 그건 군함도가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굳이 군함도를 끌어들여 영화를 만들었을 때는 훌륭한 탈출극 이상의 어떤 가치가 담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관객들은 분명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영화 '군함도'에는 참혹했던 과거사로 피해를 입었던 입장에서 가질 만한 태도, 나름의 시각, 혹은 감회까지도 찾아내기 힘들다. 그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처참했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겠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공간은 확실히 더럽고 뜨겁고 좁았으니까. 그러나 정작 조선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으며, 성큼 성큼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를 공감할 길은 없다. 또한 일제의 잔학한 행위 역시, 역사의 맥락이 아닌 영화 속 악역의 캐릭터로서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군함도' 스틸

    영화감독이 역사가는 아니지만…

    악인과 선인을 작품 속에 잔뜩 집어 넣어 뭉뚱그려놓고 영화적 인물로 소모시키며, 사람 사는 곳에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는 식의 애써 객관적인 태도도 아쉽다. 이것은 피해자의 어법이 아니라 가해자의 어법이다. 개개인의 성정이 어떻든 군함도를 둘러싼 일제의 비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가려지는 통한의 역사다.

    영화감독이 역사가는 아니다. 역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는 일은, 상업영화 감독에게 굉장히 억울할 수 있다. 볼거리가 많은 탈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야 류승완 감독은 아무 잘못이 없다. 오히려 그는 그 목적을 아주 훌륭히 달성한 편이다. 그러나 군함도의 비극적인 역사는 영화 밖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이와 관련된 실제 징용자들이나 그의 가족, 역사를 잘 몰랐던 국민들의 자책과 분노가 여전히 크다.

    영화 '군함도' 포스터

    관객은 여름용 블록버스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를 기다렸던 많은 관객들은, 이 역사로 인한 분노를 달래주고 역사의 참상을 제대로 드러낸 진지한 시도를 간절하게 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감독 역시 군함도의 역사에 분노했을 것이다. 그 분노를 감동적인 탈출극으로, 나름의 위로와 통쾌함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가상의 탈출 블록버스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역사를 극에서 다루는 건 분명히 조심스럽다. 그 역사를 대하는 대중의 심리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풀리지 않은 역사는 어떤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한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마음과,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 얻고 싶은 감정은 서로 어긋나버렸다. 그것이 영화 '군함도'의 가장 큰 실책이다.

    류승완 감독

    '군함도'에 쏟아지는 관심 그리고 비판

    '군함도'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류승완 감독은 "역사의 드라마틱한 한 순간을 여름시장의 장삿속으로 내놓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이 작업이 역사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버렸다. 군함도의 역사는 영화 '군함도'에 좋은 소재로서만 적당히 사용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군함도'의 결과물에 대해 평론가보다 관객들이 더 뜨겁게 성토하는 이유다.

    ※ 더하는 말 : '군함도'가 걸린 스크린 수가 2168개(교차 상영관 포함)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거대자본을 들인 '큰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행태가 관객으로서 참을 수 있는 극한을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향후 이렇게 얻은 성적표를 가지고 영화시상식에서 '최고흥행상'이라는 해괴한 부문의 트로피를 받고 수상 소감 이야기할 장면을 떠올리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리뷰
    지하 1100m 지옥 탄광, 그들의 분노도 부글부글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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