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가장 좋아하는 김환기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경우에 따라 답이 다르지만, 요즘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작품은 화면에 선홍색 하트 문양이 그려진 작은 그림이다. 환기는 제목을 'Sacré-Cœur'라 붙였다. 성심(聖心), 거룩한 사랑이란 뜻이다. 화면 중심에 크게 자리 잡은 붉은 하트와 광명, 창천(蒼天)의 별 몇 개가 전부인 간결하고 강렬한 그림이다. 심장에서 뿜어나온 열정이 하늘에 닿아 별이 되었을까?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가 '나는 너의 심장!'이라는 울림을 보낸 것일까?
그림과 관련해 이런 질문도 받는다. "저 하트가 환기의 뮤즈이자 부인이었던 김향안에게 바치는 마음인가요?" 그렇지 않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화업에 매진하던 환기는 어려운 상황을 딛고 전시를 열었다. 그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파리지앵들은 바캉스를 떠나 전시는 활기를 잃었다. 그때 서울로부터 비보가 날아왔다. 김향안은 "고국에서 어머님이 돌아가신 부음을 받고 환기는 미칠 듯이 괴로워했다. 울면서 'Sacré-Cœur'를 그렸다"고 회고했다.
환기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에 그린 점화추상화에도 하트를 남겼다. 감청과 군청색 점들로 채워진 검푸른 화면 아래쪽에 붉은 하트를 새겨 넣었다. 삶과 죽음의 고통스러운 경계에서 자연스레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우주' 같은 환기의 대형 점화추상 작품들이 은하수와 그리움과 추억의 편린을 시적 상상으로 동반하듯, 그림은 미학 이전에 정서의 표출이고 형식을 넘어서는 내용의 감동인 것이다.
환기가 표지화를 그린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쳤다. 북간도 하늘 아래 계실 어머니를 부르며 절절히 토로하는 순결한 청년의 정신과 고뇌가 환기의 '성심'처럼 뜨겁게 전해온다. 화가와 시인 그리고 나에게도 거룩한 사랑의 정수, 구원의 상징이자 영감의 원천인 어머니는 창공의 별이 된 심장의 모습처럼 예술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살아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