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안정'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중국 정부가 이른바 '회색 코뿔소'들의 위험한 질주에 급제동을 걸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 보도했다. '회색 코뿔소'란 '뻔히 보이지만 경제를 위협하는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위험'을 뜻하는 말로 거액의 저리 대출을 등에 업고 무차별적인 해외 투자를 해온 중국 재벌들을 뜻한다.
NYT에 따르면 중국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17일 종합 1면에 게재한 칼럼에서 "중국 경제에서 블랙스완(검은 백조·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도 조심해야 하지만 회색 코뿔소들도 경계해야 한다"며 '회색 코뿔소 경계론'을 제기했다.
인민일보의 칼럼 이후 '회색 코뿔소'가 어느 기업을 지칭하는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제기됐다. NYT는 "중국 국영은행들이 제공하는 값싼 대출을 이용해 해외 기업이나 부동산을 거침없이 인수해온 다롄완다, 안방그룹, 하이난항공그룹, 푸싱인터내셔널 그룹이 바로 그들"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5년간 이 4개 재벌은 세계 기업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 인수합병(M&A) 바람을 일으켰다. 4개 그룹의 해외 M&A 액수는 410억달러(약 46조원)를 넘어섰다. '월트디즈니' 추월을 선언한 다롄완다는 지난해 미 영화스튜디오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달러에 사들였고, 안방그룹은 뉴욕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20억달러에 인수했다. 푸싱인터내셔널은 글로벌 리조트 기업 '클럽메드'와 영국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 축구단까지 인수했다. 하이난항공 그룹은 힐튼 호텔과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기업들의 지배 지분을 잇따라 확보했다.
이 재벌들의 덩치와 비례해 빚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금융 부문을 제외한 중국 기업 부문의 부채는 2011년 중국 GDP 대비 120%에서 166%인 19조 달러로 폭증했다. 그에 따라 이들의 해외 진출을 밀어줬던 중국 정부의 시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투자가 '자산 해외 유출'이 아니냐는 비판이 불거졌고 거대한 빚이 부실화할 경우 중국 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회색 코뿔소'의 질주에 중국 정부가 최근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달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이 당국에 연행되면서 경영에서 손을 뗐다. 푸싱인터내셔널 궈광창 회장도 구금설이 제기되고 있다. 인민일보 사설이 나온 직후 중국 은행감독위원회(은감위)는 중국 1위 갑부 왕젠린이 이끄는 다롄완다의 해외 투자 프로젝트를 겨냥하고 나섰다. '다롄완다에 대해 대출을 해주지말라'는 지시가 국영은행들에게 하달된 것이다. 왕젠린 회장은 결국 회사의 핵심 사업인 호텔과 리조트 부문 전부를 중국 다른 기업에 매각하기로 했다. NYT는 "중국 정부의 조치가 자칫 코뿔소 자체를 죽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경제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