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

    입력 : 2017.07.22 03:02

    [마감날 문득]

    교보손글씨대회라는 행사가 열린다고 해서 호기심에 신청했다. 글은 잘 못 써도 글씨는 잘 쓴다고 생각해온 터라 입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다. 이전 대회 입상자들 글씨를 보니 흠,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며칠 뒤 우편물이 왔다. 응모 안내문과 손 글씨 쓸 응모지 두 장, 반송용 봉투가 들어 있었다. 사실 이것부터 놀라운 일이었다. 무슨 대회에 참가 신청했더니 우편배달부가 우편물을 들고 찾아왔다. 나는 그 내용물을 채워넣어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쳐야 하는 것이다. 대관절 이런 일이 얼마 만에 벌어지는 것인가!

    좋아하는 책 속 글귀를 50자 이상 손으로 써서 보내는 것이 대회 참가 요령의 전부였다. 봉투를 뜯자마자 소로의 '월든'을 펼친 뒤 이 문장을 골라냈다. '나는 신문에서도 기억해둘 만한 뉴스를 읽은 적이 없다. 뉴스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바로 내가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지 깨닫고 조용히 다른 문장을 고르기 시작했다.

    '피라미드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처럼 많은 사람이 어떤 야심만만한 멍청이의 무덤을 만드느라고 자신들의 전 인생을 허비하도록 강요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19세기 고집불통 사내가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명쾌하게 정리한 이 문장을 택했다. 필기구로는 만년필을 골랐다. 먼지를 뒤집어쓴 가죽 케이스 속 만년필에 잉크가 말라붙어 있었다. 새 잉크를 넣은 만년필은 도살장행을 예감한 소처럼 뒷걸음질치며 따라오지 않았다. 마중물 넣듯 펜촉에 잉크를 흘려주자 글씨가 써지기 시작했다.

    손 글씨는 결국 보내지 않았다. 오랜만에 공들여 쓴 글씨가 영 낯설고 내 글씨 같지 않았다. 전혀 잘 쓴 글씨로 보이지도 않았다. 손 글씨를 자랑하려고 고른 소로의 독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응모 마감 후 이 대회에 참가하려고 동호회들이 단단히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글귀도 함부로 고르지 않았다. 어쨌든 한 가지는 새삼 배웠다.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것, 얼마나 소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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