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하늘 교통체증 해결사들 "금지 약물이라 감기약도 못 먹어요"

    입력 : 2017.07.22 03:02

    여름 휴가 성수기 맞은 인천공항 관제탑에 가보니…

    月1회 불시 음주·약물 검사
    업무 전 8시간 이내 음주 땐 음주 측정 받아야 근무 가능
    약 먹으면 업무에서 제외… 감기 달고 일하는 경우도

    항공기 결함 때 가장 아찔
    이명박 前대통령 태운 1호기, 기체서 소음·진동 발생하자
    기름 버리고 긴급 회항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긴장"

    관제사 언어 때문에 실수도
    교신 안 좋아 잘못 들으면 '다시 말해'가 공식 용어
    일반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명령조로 말해 사과하기도

    "○○에어 제로투원(○○Air 021), 런웨이 트리트리레프트(Runway 33L), 클리어드 포 테이크 오프(Cleared for Take Off)."

    지난 11일 오후 인천 중구 운서동 인천국제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94.2m 높이 관제탑 안 관제사가 이륙을 기다리던 항공기 기장과 교신했다. "○○항공 021편, 33L 활주로에서 이륙하라"는 내용이었는데 '33L'을 "트리트리레프트"라고 읽었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기영재(37) 관제사는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이 발음 오해를 막기 위해 '3'을 'tree'로 읽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착륙 허가를 요청하는 항공기에 고도를 낮추고 기다리라는 교신을 보냈다.

    인천공항 관제탑은 항공수송 수요가 늘어나는 휴가 기간 돌발상황에 대비해 관제탑 내 근무자를 늘리고 전 직원이 언제든 출근할 수 있도록 대기한다. 올여름에도 이달 21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특별 교통 대책 기간을 운영한다. 지난달에는 하루 평균 970대의 항공기가 인천공항을 찾았고 여름·겨울 휴가철과 명절 연휴에는 하루 1000대 이상으로 늘어난다. 공항이 문을 연 2001년 평균 243대와 비교하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공군 출신 경력 21년차 지군석(51) 관제과장은 "관제탑은 명절과 여름·겨울 휴가 기간에 오히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한다"며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황금연휴가 생기기 때문에 더 바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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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365일 교대근무를 하는 관제사들은 동료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교대 시간이 돼도 레이더에 빼곡한 항공기를 보면 미안한 마음에 마이크를 바로 놓지 못하고 항공기 한 대라도 더 착륙시키고 마이크를 넘긴다고 했다. / 인천=성형주 기자
    공항 문 연 해보다 항공기 4배로 증가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항공청 소속 인천관제탑은 공항 반경 5NM(노티컬 마일·약 9㎞), 고도 3000피트(약 900m) 구역의 항공관제를 맡는다. 이 안에 있는 항공기들의 운항을 통제하고 순서를 정해 공항 이·착륙 허가를 내리는 것이 주 업무다. 이·착륙이 상대적으로 적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에는 시간당 평균 20~30여 대, 수요가 많은 낮에는 한 시간에 50~60여 대가 몰려 1분에 한 대꼴로 관제탑 신호를 받아 뜨고 내린다. 현재 3개 활주로가 있는 인천공항은 한 시간 최대 70대까지 이·착륙이 가능하다. 관제탑에는 관제탑장을 포함해 32명이 3개 팀 1일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교통량이 집중되는 낮 시간대에는 '스윙 근무자(시간 유동적 근무자)'를 추가로 편성한다. 평균 경력은 14.1년에 남성 17명, 여성 15명으로 성비는 비슷하다.

    공항 중앙 100.4m 높이 관제탑을 사용했었지만 현재는 옆에 비어 있는 제2 계류장 관제탑을 쓰고 있다. 개항 때 호주에서 들여온 항공교통관제시스템이 노후돼 다음 달 말까지 스페인 업체 시스템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계류장 관제탑은 이륙 전 항공기를 활주로로 이동시키거나 착륙한 항공기를 계류장으로 옮기는 등 지상관제 업무를 주로 맡는 곳이다. 인천공항은 늘어날 항공 교통량에 대비해 개항 때부터 관제 업무를 나눴고 계류장 관제 업무는 인천공항공사가 맡고 있다. 현재 인천 관제탑과 계류장 관제탑이 각각 운영 중이고 내년 초 문을 열 예정인 제2터미널에 계류장 관제탑과 활주로가 하나씩 더 생긴다. 2000년 인천공항 관제탑 직원으로 입사한 김종화(여·40) 계장은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테스트하러 올 때는 다리가 없어 몇 달 동안 월미도 위 율도에서 배를 타고 다녔고 공항을 찾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며 "공항이 커지고 항공 교통량이 늘면서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불시 약물검사… 감기약도 못 먹어

    초창기 관제사는 공군에서 운항·관제 업무를 맡았던 군 간부 출신이 많았다. 최근에는 항공교통관제교육원을 운영 중인 항공대와 한서대 출신이 주를 이룬다. 관제사 업무를 위해선 항공안전법에 따라 '항공교통관제업무한정' 자격 증명을 따야 한다. 인천 관제탑은 400시간 직무교육훈련과 1년가량 직무교육을 받고 심사에 합격해야 자격 증명을 받을 수 있다. 관제탑마다 사용 장비가 다르고 공항 주변 지형과 날씨가 천차만별이라 베테랑이라도 다른 관제탑에서 일하게 되면 자격 증명을 다시 따야 한다. 이런 이유로 특별한 개인 사정이 아니면 인사이동이 거의 없이 한 관제탑에서 장기 근속한다. 지 과장은 "업무 숙달에 1년 이상 걸리다 보니 휴직이나 병가로 결원이 생기는 경우 신규 인력을 바로 투입할 수 없어 업무 과부하가 생긴다"며 "관제사 양성 기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대비 인력을 배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제사들은 매달 1회 이상 음주 검사를 받고 불시에 약물검사도 받는다. 업무 시작 전 8시간 이내에 술을 마신 경우 음주 측정을 받아야 한다.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치도 음주 운전 단속(0.05%)보다 훨씬 엄격한 0.03%였으나 작년 항공법 개정으로 0.02%로 강화됐다. 이 수치를 넘으면 즉시 근무에서 제외되고 적발 보고서가 국토교통부에 제출된다. 안경을 쓰는 관제사는 규정에 따라 비상용 안경을 추가로 항상 휴대해야 한다. 감기약도 함부로 먹을 수 없다. 관제사의 판단과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 약품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구슬(여·30) 주임은 "약을 먹으면 업무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감기를 달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강순창(52) 총괄팀장은 "혈압이 높아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는데 2주 이상 약을 먹는 사람은 항공 전문의 자문과 의료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업무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2002 월드컵 때 "축구 어떻게 됐나요?" 교신

    항공기 기장과 관제사 사이 사담(私談)은 피해야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은 특별한 상황이었다고 관제사들은 말했다.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8강 경기가 연장전과 승부차기로 이어지면서 중계를 보던 승객과 기장·승무원들은 결과를 보지 못한 채 이륙 항공기에 올랐다. 승객들은 기내에서 승무원들에게 결과를 물어봤고 기장은 관제탑에 조심스레 "승부차기 어떻게 됐나요?"라는 교신을 날렸다. 강 팀장은 "'우리나라가 이겼다'고 전하니 기장이 바로 기내 방송을 해 승객들이 일제히 환호했었다"며 "지금은 이륙 전까지 스마트폰을 쓸 수 있지만 그때는 관제사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선에서 미국과 맞붙었을 땐 미군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인천 관제탑은 군용기 운항 때문에 미군과 수시로 연락하는데 이날은 미군들이 평소와 다르게 까탈스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또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로 패배한 이탈리아 대표팀 전용기 기장은 몽니를 부렸다. 김 계장은 "입국할 때 쾌활했던 기장이 조기 귀국 하게 되니 딱딱한 말투로 신경질을 냈다"며 "요즘은 관제 교신만 하기도 벅차서 이런 에피소드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3월 1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공군 1호기)가 성남 서울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를 향해 이륙한 지 30여 분 지나 서해상에 접어들었을 때 기체에서 소음과 진동이 발생했다. 전용기는 비상착륙에 대비해 해상에서 선회비행을 하며 기름을 버리고 인천공항으로 긴급 회항했다. 사상 처음 발생한 대통령 전용기 긴급 회항이었다. 이날 관제 마이크를 잡고 있었던 김 계장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긴장했다"며 "경호 규정 때문에 1호기 긴급 회항을 알려주지 못하니까 이·착륙을 기다리던 기장들의 항의가 쏟아졌었다"고 말했다.

    수백㎞ 속도로 비행하는 항공기지만 정상 운항 중이라면 공중에서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항공기마다 자체 레이더로 주변 항공기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충돌 가능성이 있을 때는 자동으로 회피하는 기능이 장착돼 있다. 하지만 공항 주변 기상 악화 등으로 좁은 공간에 항공기가 모일 경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강 팀장은 "착륙 허가를 기다리던 항공기가 비구름을 피해 한쪽으로 모일 때는 아찔하다"며 "레이더 점 하나로 보이는 항공기 하나에 승객 수백명이 탄 사실을 떠올리면 정신을 더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2시 40분쯤 실시간 추적으로 확인한 인천공항 주변 항공기들. 낮 시간대에는 1분에 한 대꼴로 인천공항에 이착륙한다.
    지난 7일 오후 2시 40분쯤 실시간 추적으로 확인한 인천공항 주변 항공기들. 낮 시간대에는 1분에 한 대꼴로 인천공항에 이착륙한다. / flightaware 홈페이지 캡처
    하늘에도 교통체증

    교신 과정에서 잘 듣지 못한 경우 공식 관제 용어는 'Say again(다시 말하세요)'이다. 많은 관제사가 이 직업병 때문에 해외에 나가 실수를 한다. 식당 직원이나 일반인에게 자신도 모르게 "다시 말하라"고 명령조로 말해 사과를 한 적이 한두번씩 있다. 이 실수를 웃어넘기는 집단은 같은 관제사와 기장뿐이라고 한다. 교신 때 2초 이상 공백이 생기면 장비 이상을 의심하기 때문에 짧게 빨리 말하는 것도 관제사들만의 버릇이다.

    황금연휴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명절에는 집안 맏이여서 차례를 주관해야 하는 1~2명만 쉴 수 있다. 2014년 입사한 은 주임은 "관제사라는 직업을 택할 때부터 누구나 감수하는 일"이라며 "행정 업무를 맡게 되면 주간 근무를 할 수 있지만 관제사는 역시 마이크를 잡고 교신할 때 가장 재밌고 보람 있다"고 말했다. 지 과장도 "관제사들은 일부러 일이 많은 시간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항공기로 꽉 막혀 있던 하늘길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재미를 느끼는 직업이 관제사"라고 말했다. 반면 관제탑을 나서는 순간 직장에서 100% 해방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김 계장은 "회사원은 집에서도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지만 비행기가 관제사 집으로 날아오지는 않으니까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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