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칼칼한 생태찌개에 갓지은 밥… 금세 다 비웠네

  •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

    입력 : 2017.07.22 03:02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관훈동 '부산식당'

    찾아간 식당에는 식사를 거의 마친 남녀 둘뿐이었다. 손님이 빠져나간 뒤라 허리가 굽은 노인 한 무리가 빨갛고 큰 대야에 열무를 절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식당이 저녁 준비를 하고 밀린 반찬을 하는 시간이다. 당연히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파마를 하고 백발에 안경을 쓴 노인은 "이쪽으로 앉으세요. 저쪽은 바람이 불어서"라고 자리를 권했다. 서울 인사동 어귀, 쌈지길 건너편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나오는 '부산식당'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볼 필요는 없었다. 오기 전부터 이미 먹을 것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생태찌개랑 삼치구이요." 주문을 넣자 안경 쓴 노인이 경상도 억양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 또 오시나요?" 나는 혼자라고 답했고 노인은 "좀 많을 텐데" 하고 뒷말을 흐렸다. 그 말에 나는 괜히 씩씩하게 "괜찮아요" 하고 답했다.

    부산식당을 처음 찾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이제 10년도 훨씬 전, 볼 것 없는 대학생 주머니 사정으로도 괜찮은 식사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면 갓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손님이 오면 그제야 밥을 안치기 때문이다. 머릿수에 맞춰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같은 것을 시킨 뒤 웃고 떠들고 있으면 밥이 나왔다. 함께 부산식당에 다녔던 친구들은 매일같이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일이 바빴고 결혼했으며 유학을 갔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혼자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건을 한 중년 여자가 보리차 한 주전자를 놔두고 갔다. 한 모금 머금으니 구수하고 진한 향이 다가왔다. 잠시 뒤 바람에 불꽃 날리는 것을 막으려 둥그렇게 철판을 친 가스버너 위에 생태탕이 올라왔다. 냄비를 가로질러 생태 한 마리가 누웠고 그 위로 빨간 양념과 미나리, 콩나물, 두부, 다진 마늘이 보였다. 오이 무침, 찐 양배추, 낙지 젓갈, 열무김치도 상에 놓였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간간이 반찬을 집어 먹었다. 그 사이 노인은 "밥 이제 뜸 들일 때 되지 않았어요?" "삼치 고 녀석을 이제 뒤집어야 될 것 같은데 한번 봐줄래요?"라고 주방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노인의 말이 끝나고 잠시 뒤, 시간을 들여 지은 밥과 함께 삼치구이가 내 앞에 왔다. 검정콩 세 알이 나란히 올라간 밥은 산소처럼 둥그렇게 솟아올라 있었다. 주걱으로 대충 푼 모양새가 아니었다. 밥을 한 숟가락 푹 퍼서 입에 넣었다. 한 알 한 알 풀어지는 밥알은 고소하고 달았다. 생태찌개〈사진〉는 막힌 곳 없이 칼칼하고 시원했다. 생태 살은 봄날 새순처럼 부드러워 숟가락으로 살살 퍼 올려야 했다. 두툼한 가운데 토막을 구운 삼치는 간간해서 밥반찬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남김없이 밥그릇을 비운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밥 한 톨이 아까웠다.

    나는 일어나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안 계시네요?" 예전에 깡마르고 눈빛 맑은 노인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던 일이 기억 났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게 10년 전인데, 그때는 학생이었나 보다. 결혼은 했고?" 의자에 앉아있던 안경 쓴 노인이 나를 보고 잔잔히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말이 바람 되어 가슴을 휘젓고 지나갔다. 잊으며 잃어간 시간들이 떠올라 숨이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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