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1990년 무렵의 등려군.

50대 이상에게 더 친숙할 중국어 표기법을 인용해보자. 진가신(천커신)이 감독하고 여명(리밍)과 장만옥(장만위)이 주연한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 뉴욕 거리 전파상 앞에서 두 사람이 극적으로 재회하는데, TV가 한 가수의 죽음을 전한다. 이때 흘러나오는 고인의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당신은 내게 물었죠,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내 감정은 진실되고, 내 사랑도 진실이랍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18일 오후 서울 순화동 복합 문화 공간 '순화동천'에서는 이색 간담회가 열렸다. '아시아의 가희(歌姬)'로 불리는 대만 출신 가수에 관한 책을 같은 시점에 각각 출간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두 출판사가 함께 자리를 만든 것. '중국의 낮은 등소평이 지배하고, 밤은 등려군이 지배한다'라는 말까지 낳은 그 가희의 이름은 등려군(덩리쥔·1953~1995)이다.

글항아리의 '등려군: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장제 지음·강초아 옮김)는 자타가 공인하는 등려군 공식 전기. 2013년 등려군 탄생 60주년을 맞아 친오빠가 회장으로 있는 등려군문교기금회(文敎基金會)가 기획했고, 10년 동안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8개국 200명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쓴 '등려군 세밀화'다.

1967년 데뷔 후 1995년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등려군은 2000여 곡을 남겼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선풍적 인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이름보다 '첨밀밀' '야래향' 등 노래로 더 익숙한 편. 강성민 대표는 "한국 활동이 적었던 탓에 등려군의 가행일치(歌行一致) 면모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노래뿐만 아니라 인간 등려군의 미덕이었던 배려와 공감도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한길사의 '가희 덩리쥔: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최창근 지음)는 등려군의 일대기를 씨줄로, 중화권 시대상을 날줄로 엮은 책. 대만 유학파로 '대만: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등을 쓴 대만 전문가 최창근(34)씨의 작품이다. 1989년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등려군은 홍콩에서 베이징 시위를 지지하는 콘서트에 참여했고, 일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 바 있다. 최씨는 "글항아리 책이 인간 등려군에게 집중했다면, 저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려 노력했다"면서 "등려군을 이해하는 상호 보완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침 올해는 '첨밀밀' 국내 개봉 20주년, 홍콩 반환 20주년의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