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정주영家 '선한 투자'가 만났다

    입력 : 2017.07.17 19:22

    14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난 '록펠러 형제 기금'의 발레리 록펠러 웨인(오른쪽) 회장과 HGI 정경선 대표. 헤이그라운드는 정경선 대표가 투자자를 모아 만든 소셜벤처·사회적기업을 위한 업무 공간이다. 두 사람은 "번 돈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했다./김연정 객원기자
    존 D. 록펠러와 정주영이라는 이름에 미국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산업 개발기에 맨손으로 회사를 세워 큰 부(富)를 이룬 ‘거인 기업가’로 여겨진다. ‘석유왕’ 록펠러의 5대손인 발레리 록펠러 웨인 ‘록펠러 브라더스 펀드’(Rockefeller Brothers Fund·RBF) 이사회 의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손자인 정경선 HG이니셔티브 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서 마주 앉았다.

    이들은 재벌가 자손이라는 점 외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는 뜻의 ‘임팩트 투자’를 실천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정 대표가 투자자를 모아 성수동에 세운 소셜벤처·사회적기업을 위한 업무 공간 ‘헤이그라운드’ 개점 기념행사에 연사로 참석하려고 서울을 찾았다. 헤이그라운드는 사회적기업 등이 비교적 저렴한 임차료를 내고 입점해 일할 수 있도록 한 지상 8층, 지하 1층짜리 공유 오피스다. 지난 13일에 문을 열었다. 정 대표는 헤이그라운드를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 대표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록펠러 가문의 자선 사업을 구상하는 ‘록펠러 자선자문단’ 이사로 함께 일하고 있다.

    ◇갑부 조상은 행운…의미 있는 투자로 갚는다

    RBF는 록펠러 가문의 재산으로 형성된 펀드로, 운용액은 8억9000만달러(약 1조43억원) 정도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이 펀드의 돈을 화석 연료에는 더이상 투자하지 않겠다고 2014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는 환경 보호 등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기업인지를 평가해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겐 돈 버는 데 아주 뛰어난 수단을 지녔던 조상이 있으며 이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물려받은 돈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라고 했다.

    록펠러 웨인 의장과 정경선 대표는 임팩트 투자가 돌려받을 계획 없이 돈을 기부하는 ‘자선’과는 다르다는 데 동의했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이런 방식의 투자를 통해서도 돈을 벌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정부와 민간 금융회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RBF 같은 형태의 비정부·비기업 기금의 규모는 4000억달러지만, 정부 운용 자금은 4조달러이고 민간 펀드는 65조달러를 굴린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사람들은 석유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느냐고 걱정하지만 우리의 지난해 수익률은 13%로 웬만한 펀드를 앞질렀다”고 말했다.

    ◇임팩트 투자의 숨은 힘은 ‘대중의 변화’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의 아들인 정경선 대표는 그가 HG이니셔티브를 세워 하고 있는 임팩트 투자를 두고 ‘부자들이나 하는 신선놀음’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돈 없으면 누가 못해’라는 댓글이 꼭 달리더라. 하지만 이런 임팩트 투자를 가능하게 이끄는 진정한 힘은 다수의 지각 있는 일반 소비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윤리적이고 양심적인 기업의 물건을 돈 내고 삼으로써 그 기업을 성장하도록 돕는 수많은 소비자가 없다면 임팩트 투자로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록펠러 웨인 의장은 코네티컷주(州)에서 뉴욕까지 열차로 출퇴근한다. 오랑우탄의 거주지인 야생 숲 벌목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팜유(油)가 들어간 립스틱도 안 바른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습관 변화가 투자 흐름을 바꾸고 결국은 사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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