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정권의 재판

    입력 : 2017.07.17 03:16

    이제껏 대통령들이 민감한 수사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면 야당은 "수사 가이드라인"이라며 들고일어났다. 실제 그런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또 터졌다. 그나마 역대 청와대가 금기시했던 게 하나 있다. 재판에 대한 언급이다. 기자들이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언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피해 갔다. 사법권 훼손 시비를 피하려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그 점에서 지난 14일 청와대 기자회견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대가로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청와대가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검토 문건을 발견했다"고 했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공문서 형식도 갖추지 않은 메모를 유죄 증거라도 되는 양 공개했다. 검찰도 이런 식으론 하지 않는다. 

    [만물상] 정권의 재판
    ▶같은 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하루 연가(年暇)를 내 이 부회장 재판에 특검 측 증인으로 나왔다. 장관급 인사가 증인으로 서는 것도 보기 힘든 일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에 반대했다면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양복에 달던 공정위 배지를 떼고 개인 차량을 타고 나왔다. "시민 자격으로 왔다"는 걸 부각시키려는 듯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그의 증언을 '어느 시민의 증언'쯤으로 여기긴 어려울 것이다.

    ▶지난 12일 이 부회장 재판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깜짝 출석'해 최씨와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다. 변호인도 모르게 새벽에 특검 차량을 타고 집을 나와 법정에 섰다. 변호인은 '보쌈 증언'이라며 반발했지만 특검은 "하루 전 정씨를 설득했다"고 했다. 정씨가 단순한 설득만으로 그렇게 했을까 싶다.

    ▶이 부회장 재판 결과에 따라 박 전 대통령 재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달 초 이 부회장 재판에서 뇌물죄의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몇몇 보도가 나왔다. 그 후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이 이 부회장 유죄를 받아내려고 총력전을 펴는 듯하다. 사실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 사건에서 무죄가 나면 '촛불'과 '탄핵'의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권한 남용이었지 뇌물죄가 아니었다. 정권이 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건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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