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국가 인프라 정책에 로마인의 지혜를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입력 : 2017.07.17 03:17

    도로·다리·상하수도 건설한 로마는 인프라 소중히 여기고 공공의 이익과 미래에 투자
    60년간 쌓아온 원전 인프라… 대통령 한마디에 무너뜨리나
    청산 아닌 조정과 개선이 답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문재인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는 적폐 청산인 듯하다. 대통령 후보 시절 대표 공약이 적폐 청산이었으며, 조만간 적폐청산조사위원회도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포장이나 명분이 어떠하든,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깨끗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국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접하는 셈이다. 하긴 이런 맛에 정권 교체가 필요한지 모른다. 특히 새 정부는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말을 유난히 즐겨 쓰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익숙해져 있던 인식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 각 영역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높다. 국책 인프라 부분도 예외가 아니어서, 4대강 재(再)자연화와 탈(脫)원전 선언이 가장 대표적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강은 강다워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후자와 관련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논리는 그 자체로서 참으로 곱고 바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국가 인프라 문제를 반(反)개발 환경주의 코드로만 재단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국토계획, 에너지, 자원, 교통·통신처럼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의 기반이 되는 시설이나 제도는 매우 복합적으로, 대단히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프라는 사회간접자본으로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늠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이야기'(전 15권) 가운데 제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형식과 내용을 완전히 달리하여 저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프라만큼 그것을 이룩한 민족의 자질을 잘 나타내는 것은 없다고 믿었던 그녀는 로마인을 '인프라의 아버지'라 불렀다. 로마인들은 인프라를 표현할 단어가 미처 없는 가운데 인프라 구축을 시작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인프라는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의 기준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의 만리장성은 인프라가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프라는 가도, 다리, 상·하수도 등이었고, 이 모두는 시민의 일상적 삶에 직결된 것이었다. 로마 고유의 건축양식인 개선문이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황제만이 아니라 가도나 다리를 건설한 황제에게도 바쳐진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로마 시대의 인프라는 결코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었다. 대신 그것은 현재의 공공 이익을 구현하는 방책이자 국가 백년 혹은 천년 대계를 준비하는 전략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문명의 진정한 위대함이 인프라에 있다고 보았다.

    6월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에 비해 우리는 인프라 문제를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 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한반도대운하 건설과 같은 초(超)국책 사업이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으로 급조된 경우가 이를 잘 말해준다. 국가 기간(基幹) 인프라가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된 것이다. 4대강 살리기는 국민적 환영을 별로 받지 못한 채 졸속으로 추진되었고, 지금은 4대강 사업 죽이기가 또다시 졸속으로 논의 중이다. 참을 수 없는 인프라 정책의 가벼움은 원전 제로 선언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1950년대부터 피땀 흘려 축적한 원자력 인프라가 취임 한 달째 대통령의 단 한 번 연설 이후 이슬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무릇 인프라 정책은 깊게 들여다보고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로마의 역사가 웅변하듯이 그것은 국가의 원초적 존재 이유를 묻고 답하기 때문이다. 적폐라고 해서 단칼로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 인프라 정책의 특징이다. 과거의 인프라 정책이 그랬다고 해서 그것을 평가하는 일이 똑같이 속전속결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인프라 정책은 국가의 연속성 위에 필요와 능력에 따라 조정하고 개선하는 점진적 진화과정이 원칙이요 정상이다. 로마 문명의 후예인 서구의 선진국들이 에너지 정책을 놓고 수십 년째 고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구 문명을 잉태한 유럽의 하천들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해 토목과학을 넘어 토건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린다는 말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감동할지 모른다. 장밋빛 에너지 민주주의론에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솔깃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활이 곤란해지고 미래가 불안해진다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키우는 일이다. 또한 정부가 뒤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서는 일이다. 국책 인프라를 시류에 맡길 수는 없다. "민중은 추상적인 것에 대해서는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인용하는 마키아벨리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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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전상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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