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日 편의점은 농사도 짓는데

    입력 : 2017.07.17 03:12

    손진석 경제부 기자
    손진석 경제부 기자

    "빚으로 성장률을 높인다는 거잖아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핵심이 같다니까요." 경제 부처 고위직을 지내고 대학 강단에 선 사람을 만났더니 '부채주도성장론'이라는 말을 꺼냈다. 빚을 성장의 매개로 삼는다는 점에서 현 정부와 직전 정부가 궤를 함께한다는 것이다. 빚을 내는 주체가 바뀐 차이만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 규제를 풀어 가계 빚을 늘렸다. 그렇게 해서 부동산 경기에 불을 지폈다. 현 정부는 나랏돈으로 공무원을 늘리고, 갖가지 수당을 찔러줘 소득을 높여주면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설파한다. 가계부채가 주춤해져도 이제는 나랏빚 불어나는 걸 지켜봐야 한다. 표가 무서워 증세(增稅)에는 몸을 사리니 국채(國債)를 찍지 않고서는 견딜 재간이 없다.

    성장의 발판이 될 재원을 어디서 끌어오느냐가 시끌벅적한 이슈가 되는 와중에 경제 활동의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논의는 소리 소문 없이 끊겼다. 직전 정부는 효과가 컸다고 보긴 어렵지만 규제 완화를 병행하려 애썼다. 여성 대통령이 "규제는 쳐부숴야 할 암 덩어리"라며 거친 언사를 동원하며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나랏돈을 뿌려주겠다는 청사진만 여러 장 나올 뿐 민간의 활력을 높이자는 논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전 정권 냄새가 짙다며 기업인의 애로를 풀어주는 '무역투자진흥회의'도 슬그머니 중단했다. 지역별로 특화된 산업의 규제를 없애주는 규제프리존법도 사실상 폐기됐다.

    /조선일보 DB
    세계 주요국은 규제 제거를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삼고 있다. 빚을 주재료로 삼는 한국식 처방전을 쓰는 나라는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과 일본만 해도 원격 진료가 가능하고 거의 모든 약품을 택배로 주문할 수 있다. 우리는 규제에 막혀 옴짝달싹 못 하는 분야다. 수재(秀才)가 대거 의대에 들어가는데도 의료 산업화는 요원하다. 일본에서는 편의점 업체 로손이 농사를 짓고, 중국에서는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가 화훼업에 진출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일자리를 쏟아지게 하는 분야에서 우리는 규제에 가로막혀 꼼짝 못 하고 있다. 어떤 대기업 임원은 "여건만 되면 목돈을 투자할 채비가 돼 있지만 규제가 여전한 데다, 정부가 나서서 돈을 쓴다니 기업 입장에서는 일단 지켜보게 된다"고 했다.

    재정을 쏟아부어 공무원을 늘리는 식의 '인공 일자리' 창출 계획은 물이 부족하니 나무줄기가 머금은 물을 빼서 뿌리에 주겠다는 것 아닌가. 급한 대로 한두 번은 해볼 만하다. 하지만 새로운 수로(水路)를 뚫어 시원하게 물을 공급하지 못하면 결국 나무는 말라 비틀어진다. 빚을 내서 돈을 뿌리는 건 잘해야 성장의 촉매제 정도이지 근본적인 에너지원이 아니다. 일자리가 쏟아지는 견고한 성장을 이뤄내려면 경제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빚으로 성(城)을 쌓아 올리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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