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FTA 내로남불

    입력 : 2017.07.15 03:06

    2008년 말 국회 외교통상위가 전쟁터가 됐다. 여당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미 FTA 비준안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민주당 의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공성전(攻城戰)을 방불케 하는 충돌이 벌어졌다. 한 의원은 해머로 문을 내리쳤고 배척(일명 빠루)과 전기톱이 등장했다. 경위들이 분말 소화기를 분사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소화전 물대포로 맞섰다. 의회사(史)에 남을 최루탄 투척 사건이 터진 것은 3년 뒤 비준안을 본회의에 올렸을 때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9년간 줄기차게 한·미 FTA를 반대했다. FTA를 '을사늑약'에 비유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매국노로 몰아붙였다. 비준안이 통과되자 의회 쿠데타라며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미국 이익만 보장하는 나쁜 FTA"라 했고, 정책위의장은 'FTA 폐기'를 내걸었다. 그 두 사람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원장과 일자리 위원장이다. 

    [만물상] FTA 내로남불
    ▶사실 한·미 FTA의 씨앗은 노무현 정부 때 뿌려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협상 전(全) 과정을 지켜보았다. 'FTA의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반대하는 것은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란 자료를 민정수석실 이름으로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넘어가자 정치인 문재인의 태도가 '결단코 반대'로 달라졌다.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은 FTA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비서실장 때 옹호했던 ISD를 독소 조항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바꿨다. "노무현 정부의 FTA 추진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9년 만에 '연고권'을 주장했다. 대통령 취임 후엔 FTA 방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얼마 전 방미 때 문 대통령은 "한·미 간 이익 균형이 맞는다"며 FTA를 옹호했다. 미국은 재협상하자는데, 문 대통령은 이대로 지키겠다 하고 있다. FTA 추진에서 반대·재협상 요구로, 다시 FTA 지지 쪽으로 지그재그를 오갔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판치는 시대, FTA라고 '내로남불' 못 할 것은 없다. 집권 후에도 야당 때처럼 반대만 하는 게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치 도의는 아니다. 급기야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에게 "사과라도 한마디 하시라"고 했다. 과거 한나라당 대표였던 자신을 '매국노'라 했던 것을 겨냥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FTA 수호자'로 돌변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얘기가 많다. "그땐 생각이 짧았다"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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