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꽃무늬 원피스 입은 소리꾼, 레게 리듬 맞춰 판소리 열창

    입력 : 2017.07.15 03:02

    [2017 여우락 페스티벌]

    '국악계 이단아' 원일 예술감독, 다양한 시도로 음악 장벽 허물어… 대중성·국악 '두마리 토끼' 잡아

    둥근 달 아래 고즈넉이 자리한 피아노. 바이올린과 비올라, 콘트라베이스에 어쿠스틱 기타와 만돌린, 아코디언까지 숨죽인 무대는 고요하다. 잠시 뒤 쿵짝짝 쿵짝짝 건반과 현(絃)이 세 박자 왈츠를 춘다. 드럼도 우아한 장단을 뽑아낸다. 그때 부채를 펼치며 목소리 하나가 합주에 올라탄다. "이~리 오너라 업고 노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지난 12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의 달오름극장. 퓨전 밴드 '두번째달'과 젊은 소리꾼 김준수는 판소리 '춘향가'의 대표적 눈대목인 '사랑가'를 세련된 발라드처럼 불렀다. 이질적인 요소가 묘하게 화학작용을 일으킨 어울림이었다.

    지난 7일부터 국립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2017 여우樂(락) 페스티벌이 이 무대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돌았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준말. 세계와 소통하는 음악을 추구하는 국악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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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달빛 협주곡’무대에서 6인조 퓨전 밴드‘두번째달’과 연희컴퍼니‘유희’의 타악 주자 윤여주(가운데)가‘꽃개구리 상여가’를 연주하고 있다. 3년 연속 여우락 페스티벌에 선 두번째달은“국악을 낯설어하는 관객들이 국악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국립극장
    바삭한 셔츠에 발목 드러난 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김준수는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아이돌 가수였다. 하지만 걸쭉한 목소리가 두번째달의 풍성한 사운드와 맞물리는 순간 무대는 양악과 국악이 뒤섞인 흥분으로 변했다. "암행어사 출두야"가 하이라이트인 '어사출두'에서는 500여 관객이 다 함께 "출두야"를 외쳤다. 이어 농염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경기민요 명창 최수정은 구성진 목소리로 '정선아리랑'과 '비나리'를 불렀다. 기존 판소리와 농악의 장단과 어법을 살리면서 서양 고전 악기로 현대적 감각을 입힌 편곡이 일품이었다.

    다음 날인 13일 레게 전문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소리꾼 김율희와 손잡고 한국형 레게를 선보였다. 변화무쌍하지만 일정한 리듬으로 튀어오르는 레게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뺑덕'을 부르는 김율희의 소리와 만나 같은 뿌리를 가진 우리 음악처럼 다가왔다. 지난 11일 피리 연주자 김시율, 거문고 단원 이재하와 협연한 4인조 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은 거친 사운드에 맑고 뚜렷한 국악 음색을 덧붙여 경계를 허물었다.

    2010년 시작한 여우락은 지난해까지 4만8000여 관객을 모았다. 최근 5년간은 피아니스트 양방언, 재즈 가수 나윤선 등 다른 장르 음악인을 감독으로 영입해 장르의 확장을 꾀했다. 반면 올해는 대취타와 피리 정악 연주자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원일(50)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정통 국악인 출신이지만 홍대 인디밴드 음악에도 깊이 몸담았던 이력 덕분일까. 국악의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젊은 대중과의 호흡을 강조하는 프로그램 구성이다.

    축제 전반부는 젊은 관객이 열광하는 퓨전 밴드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두번째달' '잠비나이' '단편선과 선원들'이 대표적. 평소 록과 월드뮤직, 팝 발라드 등을 즐겨 부르던 이들이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사물놀이의 유일한 여성 주자 박은하, 경기민요 명인 이춘희 등 국악 명인·명창들과 손잡고 협업한 자체가 신선한 느낌을 줬다.

    반면 후반부는 국악 중심.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가 속한 '무토'(16일), 거문고 명인 허윤정을 주축으로 한 '블랙스트링'(21일) 등의 무대가 포진해 있다. 첼로처럼 낮은음을 내는 거문고는 창작 자체가 힘들고 다른 악기와의 협업은 더욱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해외에서 먼저 호평받으며 유명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받거나 재즈 레이블과 음반 계약을 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악계의 '한류'인 셈.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19~20일)와 박경소(21~22일)는 가야금 연주뿐 아니라 다른 장르와의 협업에도 능해 기대를 모은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지난해까지는 다른 장르의 음악가를 골고루 영입해 대중을 아우르려는 욕심이 강했다. 올해는 대중성도 추구하지만, 근본적으로 '국악 축제'라는 여우락의 본질을 강화한 점이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그동안 홍대 앞 인디밴드들이 양악과 국악의 결합을 시도해왔는데, 이번 여우락은 국립극장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그들의 실험을 맘껏 펼칠 수 있게 해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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