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아름다움 뒤엔 사랑과 헌신이…

  • 백영옥·소설가

    입력 : 2017.07.15 03:02

    [그 작품 그 도시] 영화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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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댄서’의 한 장면. 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고독에 휩싸여 무너지기 직전의 한 청년을 비추는 감독의 카메라는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댄서’ 스틸컷
    세계적인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의 다큐멘터리 '댄서'를 봤다. 특히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한 후 그가 연습하는 동영상은 수없이 돌려 본 것 같다. 톰베 파드브레(tombe pas de bourree)라 부르는 발레 동작을 할 때, 그는 옆에 있는 학생에 비해 다섯 배 이상 턴하고도 자신의 몸을 완벽히 컨트롤했다. 발레를 4년째 배우고 있는 나는 그의 옆에 있던 학생에게 빙의됐다. 세 번째 턴 전에 중심을 잡지 못해 무너지는 (발레학교에 왔을 정도면 절대 평범할 리 없는) 학생 말이다. 어른들의 우화에서 노력은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발레의 세계에선 아니다. 아기 때 폴루닌의 다리는 끝도 없이 벌어져, 조산사를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13명을 뽑는 로열발레학교에 매년 수천명이 지원한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한 후 3년이나 월반하며 19세에 로열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수석 무용수가 됐다. 발레단 후견인의 인터뷰를 보면, 황금 신상 같은 짧은 역할 속에서도 관객들은 주연이 아닌 폴루닌에게 더 열광했다. 멈출 수도, 멈춰지지도 않는 카리스마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수퍼스타가 될 운명이었다. 제2의 누레예프! 한 번이라도 이 남자의 도약을 본 사람이라면 인간에게 중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약물 남용에 파티광, 발레계의 '배드보이'라는 악명 속에서 수석 무용수 자리를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젠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발레를 위해, 근육을 많이 쓰는 걷는 쇼핑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퇴 전, 강수진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몸이 아프지 않아서 기분이 이상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세르게이 폴루닌 역시 이렇게 증언한다. "하루만 연습을 걸러도 통증이 심해서 쉴 수 없어요. 포로가 된 기분이에요."

    발레 교육은 4~5세에 시작해 19세면 완료된다. 욕구 충만한 유년기는 저절로 거세된다는 뜻이다. 발레는 삶의 100퍼센트를 요구한다. 끝없는 연습, 헌신, 절제가 기본이다. 어느 날 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이 힘들어진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다가, 폭탄처럼 폭발한 경우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태어난 그의 가족은 가난했다. 엄마는 아들의 비범함을 일찌감치 알아봤지만, 그를 유학 보내기 위해 가족은 흩어져야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포르투갈에서 독일인 부부의 정원사로 일했고, 할머니는 그리스로 떠나 자신보다 나이 많은 노인을 돌보며 일했다. 가족 모두가 세르게이 폴루닌 한 명 때문에 희생했던 셈이다. 가족의 희망이 된 그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엄마 없는 런던에서 연습실 문이 닫힐 때까지 고독과 싸우며 연습에 매달렸다. 그가 발레를 하는 목표는 바로 흩어진 가족이 뭉쳐서 함께 사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는 발레는 예외다. 발레 무용수라면 누구나 '정답'을 쓰고 싶어 한다.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가 죽음의 무대를 마치며 한 마지막 환희의 말도 이것이었다. "나는 완벽했어!" 세르게이의 놀라운 점은 그가 규칙을 따르면서도 늘 자신의 춤을 췄다는 것이다. 그는 규칙 안에 자신만의 색깔을 넣었다.

    그럼에도 유구한 발레의 전통과 규칙은 서서히 자유분방한 무용수를 질식시키곤 한다. '블랙 스완'의 니나는 정신분열증에 시달렸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가 각종 신경안정제와 강화제를 복용하며 무대 위를 누빌 때마다, 이 영화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다. 스파르타쿠스를 연기하던 그가 잠깐의 휴지기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는 뒷모습은 이 세계의 고독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근육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은 너무나 황량해서 사막화된 것이다.

    러시아로 돌아온 그가 스승 이고르 젤렌스키를 만나 새롭게 도약하고, 우여곡절 끝에 은퇴를 결심하기까지 과정을 다큐멘터리는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족과 동료의 증언들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쉽게 그만둘 수 있을 줄 알았어요"라는 폴루닌의 말은 그에게 환멸을 준 춤이 결국 자기 자신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회한 가득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촬영된 그의 춤을 사진가 데이비드 라샤펠은 '신체성과 도약'으로 압축해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가수 호지어의 곡 '테이크 미 투 처치(Take me to church)'에 맞춰 춤을 추던 그는 촬영하는 9시간 동안 울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공연 때마다 가리던 문신을 드러낸 채 격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촬영한 이 동영상을 세상에 내보냈을 때, 수천만명이 열광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대했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공연에 초대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던 폴루닌은 이 춤을 춘 이후, 가족을 공연에 초대한다. 어린 아들을 위해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많은 걸 희생했던 엄마와 아들의 대화를 보면서, 오해와 이해가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지 가늠하느라 가슴이 아팠다. "엄마는 나를 믿지 않았어. 나는 스스로 할 수 있었는데도." "너를 믿었기 때문에 통제한 거야!" 발레는 그가 아닌 엄마의 선택이었다. 어디든 다쳐서 다시는 춤을 출 수 없게 되길 바라던 폴루닌은,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체조 연습할 때 늘 널 기다린 건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가 없었기 때문이야."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 때문에 가능해진 이 발레 천재의 이야기가 공연을 보던 가족들의 눈물 어린 박수로 끝나는 걸 보다가,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시골 광부인 빌리의 아버지 역시 아들의 발레학교 입학금을 벌기 위해 '배신자' '부역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파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러 나간다. 예술의 세계에서 가족의 헌신은 이토록 눈물나는 것이어서,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말을 그 순간 믿게 된다. 세르게이 폴루닌의 도약과 점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믿게 된다. 아름다움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댄서―스티븐 캔터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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