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저항에… 일제, 용산기지 300만평서 118만평으로 축소

조선일보
입력 2017.07.14 03:04

용산구, 일본군 내부 문건 공개
무력 진압·헌병대 체포에도 반발… 지도엔 마을 위치 등 상세 기록

1906년 일본군의 토지 수용 관련 내부 문건에 포함된 옛 용산 지역 상세 지도.
1906년 일본군의 토지 수용 관련 내부 문건에 포함된 옛 용산 지역 상세 지도. /용산구
서울 용산구는 1906년 일본군이 만든 61쪽 분량의 토지 수용 관련 내부 문건을 13일 공개했다. 일본군이 용산 지역 토지를 군용지로 수용하기 전 작성한 것으로, 외국군이 주둔하기 전 용산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일본은 1908년 용산 일대 땅 약 390만㎡(약 118만평)를 대한제국에서 사들여 군 사령부로 삼았다. 1945년 해방 후 일본군이 떠난 자리엔 미군이 들어왔다.

이번에 용산구가 공개한 문건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찾아낸 것이다. 김 실장은 지난 2014년 일본의 '아시아역사 자료센터(jacar.go.jp)'에 올라온 수십만건의 일본 방위성 문건을 조사하던 중 발견했다고 한다. 이 문건엔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가 9쪽에 걸쳐 실려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명세도(상세 지도)에는 옛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당시 용산은 원효로 일대 용산방(龍山坊)과 후암·이태원·서빙고동 일대 둔지방(屯芝坊) 등으로 구분됐는데, 둔지미 마을은 둔지방의 일부였다. 둔지미 마을 주민들은 1906년 일본의 토지 수용에 집단 반발했다. 김 실장은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무력 진압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일본 헌병에 체포된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현재 미8군 드래곤힐 호텔이 자리 잡은 둔지미 신촌(新村) 마을 주민들은 모두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결국 당초 수용규모 300만평을 118만평으로 줄였다. 지도에는 후암동과 서빙고동을 잇는 옛 길도 표시되어 있다. 정부가 내년 이후 용산 국가공원을 조성할 때 참고 자료로 삼을 수 있을 전망이다.



[지역정보]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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