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버스 기사 두 배로 늘려라

    입력 : 2017.07.13 03:14

    20대 女동창생, 50대 부부… 버스 기사 졸음 사고로 숨져
    고속도로선 나흘에 1명꼴

    하루 18시간씩 이틀 연속 운전도
    버스 운전 기사 수 늘리고 요금 인상 필요하면 국민 설득을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박은호 사회정책부 차장
    꽃다운 스물한 살 여중(女中) 동창생 네 명은 그날 1박2일 피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렌터카를 빌려 강릉 경포대와 대관령 양떼목장을 들렀다고 한다. 짧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느라 귀갓길엔 수다와 웃음꽃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영원히 끊겨버렸다. 시속 약 100㎞로 달리던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폭주한 끝에 렌터카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작년 7월 17일 버스 기사 졸음운전이 낸 봉평터널 5중 충돌 사고다.

    이번엔 같은 공장에서 20년을 함께 일해온 50대 봉제사 부부가 목숨을 잃었다. 아내가 재봉틀로 옷감을 박음질해 건네주면, 맞은편 작업대 남편이 가위질이며 다림질을 했다. 아내는 물론 정기적으로 신장 투석을 받던 남편도 결근 한 번 안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석 달 뒤엔 첫 손자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7중 추돌 사고 역시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다.

    두 사건은 약 1년의 시차가 있었지만 졸음운전 사고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게 없다. 통계가 말해준다. 한국도로공사는 봉평터널 사고가 난 작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고속도로에서만 졸음운전 사고로 8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그 이전 5년(2012~2016년) 동안엔 총 414명, 한 해 평균 82.8명이다. 졸음운전 때문에 여전히 나흘에 한 명꼴로 비명횡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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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9일 오후 2시 42분쯤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 부근 2차로에서 45인승 광역버스가 K5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고 있다. ②버스가 K5 승용차 위에 올라탄 채 계속 밀고 나가면서 주변 차량과 연쇄 추돌했고, SUV 차량 한 대는 옆 차선으로 튕겨나가 뒤집혔다. ③버스는 첫 추돌 후 약 30~40m 더 나가고서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멈춰 섰다. 소방대원들이 완전히 파손된 차량을 살피며 사고 처리를 하고 있다. /유튜브·연합뉴스
    전국 도로의 졸음운전 사고를 합하면 사망자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것이다. 작년 말 현재 시내·시외버스와 전세버스(4만6517대) 등을 합해 총 10만826대 버스가 전국에 등록돼 있다. 연간 62억1200만명, 하루 1700만명 국민이 각종 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졸음운전은 이 국민의 발을 언제든 '10만대 살인 흉기'로 탈바꿈시킨다. 버스 기사가 제대로 못 자고, 과로와 피곤에 절어 있으면 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고 예방 대책은 버스 운전기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 이 단순한 상식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안전 운행을 위해서는 보통 버스 한 대당 2.3명 안팎 기사가 필요하지만, 시내·시외 버스의 경우 전국 평균 1.82명에 불과하다. 수도권 지자체 가운데 1일 2교대로 하루 9시간씩 근무하는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서울과 인천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격일제로 일하는 경기도 내 시내버스 기사는 대당 1.62명밖에 안 된다. 이러니 하루에 16~ 18시간씩 이틀 연속 일하는 사태가 빚어진다.

    봉평터널 사고를 계기로 여객운수법 시행령이 개정되긴 했다. 2시간 운행하면 15분 휴식하고, 최소 8시간은 쉬어야만 이튿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도록 지난 2월부터 버스 운전기사 의무 휴식제가 시행됐다. 그러나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버스회사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만 하면 하루 18시간이든 20시간이든 운행할 수 있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 근로기준법 59조부터 고쳐야 한다. 노사 자율 협약은 존중돼야 하나, 버스기사의 수면권을 뺏거나 하루 1700만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노사합의까지 용인돼선 안 된다.

    재정을 투입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버스 기사 10만명을 길러내는 교육·훈련 방안을 정부와 지자체가 강구해야 한다. 공무원 몇 만명 늘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일자리 대책이고, 국민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자동차 구매자에게 1000만~2000만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안전 보조금' 신설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조는 운전자를 깨우는 차로이탈경보장치(LDWS)나 자동긴급제동장치(AEBS) 등에 한시적으로라도 보조금 지급을 추진하자. 재원 마련을 위해 버스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 설득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내 가족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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