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 출신의 레슬링 영웅… 몽골 首長되다

    입력 : 2017.07.11 03:05

    [7일 대통령 당선된 칼트마 바툴가]

    '몽골리아 퍼스트' 내건 애국주의자, 16세에 국가대표… 국제 대회 제패
    의류·요식업 등 사업가로도 성공 "'한국의 기적' 몽골도 전수받기를"

    7일 실시된 몽골 대선 결선 투표에서 '레슬링 영웅' 칼트마 바툴가(54)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고 몽골 관영 몬차메(MONTSAME) 통신이 8일 보도했다. 바툴가 후보는 50.7%를 득표해 41.2%에 그친 미예곰보 엥흐볼드(53) 인민당(기존 여당) 후보를 눌렀다. 바툴가 당선인은 이날 "빚더미에 앉은 나라를 회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바툴가 후보는 대선 슬로건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 비슷한 '몽골리아 퍼스트'를 외치는 등 애국주의 성향을 보였다"며 "경제난 해결사로 급부상하면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바툴가 당선인은 1963년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브흐(몽골 전통 씨름)' 사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세 살이던 1966년 홍수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온 가족이 울란바토르 빈민가로 밀려나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굳세게 살자'고 했다. 틈만 나면 드넓은 초원에 데리고 나가 브흐를 가르쳐줬다"고 했다.

    브흐는 레슬링과 비슷하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레슬링을 시작했는데, 브흐로 단련한 덕분에 오래지 않아 에이스가 됐다. 16세에 몽골 레슬링 국가대표가 됐고, 1989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제대회를 제패하며 몽골의 레슬링 영웅이 됐다.

    이듬해인 1990년 사업가로 변신해 청바지를 동유럽에 파는 의류 무역업을 시작했다. 당시 몽골 일반인은 정부 통제 때문에 외국 여행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레슬링 선수 시절에 외국에서 경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국외 사정에 밝았다. 바툴가 당선인은 "어린 시절 생활비를 번다고 외국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팔면서 배웠던 영어가 레슬링 선수 시절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이후 사업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업으로 번 돈으로 몽골에 호텔도 짓고 택시 회사도 차렸다. 그는 레슬링에서 쌓은 인지도를 앞세워 요식업과 축산업에도 뛰어들며 사업을 빠르게 키웠다. 그는 미국 마피아 영화 '대부'에 푹 빠져 자신의 회사 이름도 극 중 인물 이름인 '젠코(Genco)'를 따서 지었는데, 자신도 큰 덩치에 마피아처럼 중절모를 즐겨 써 '몽골의 대부'로 불리기도 했다.

    41세이던 2004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레슬링 영웅 출신의 넘치는 카리스마에 자수성가한 사업가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됐다. 특히 몽골 유도협회장을 맡아서 치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몽골이 최초로 유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자 그의 인기는 더 올라갔다. 2008~2012년에는 도로교통건설부 장관을 맡아 철도 인프라 구축에 앞장섰다. 바툴가 당선인은 넓은 영토에 적은 인구가 흩어져 사는 몽골의 특징을 감안할 때 철도 확충이야말로 경제 성장의 필수 요건이라고 판단했다. 2011년 몽골에서 광물 개발 붐이 일면서 그의 철도 확충 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행정가로서도 합격점을 받은 그는 이번에 야당 대선 후보로 발돋움했다.

    바툴가 당선인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몽골 유도협회장 시절 한국 유도협회와 교류하며 여러 차례 방한했다. 그는 지난달 대선 기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전쟁을 겪은 데다 자원마저 부족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면서 "한국의 기적을 몽골도 전수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라정보]
    관광공사, 몽골 울란바토르 사무소 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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