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병원만 다니기엔 너무 아까운 老年

    입력 : 2017.07.11 03:15

    신체 변화 생길 때마다 병원 순례
    모든 증상을 질병으로 여기는 '메디컬리제이션' 현상에 빠져
    미세먼지 많은 날 기침은 '청신호'… 만성 아니라면 병원 안 가도 돼
    건강보조 약물이 몸 그르칠 수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A씨는 77세 여성이다. 평생 미혼으로 살면서 4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했다. 퇴임 후 연금으로 그 나름대로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 A씨는 화려한 싱글의 원조였다. 뭐든 자신 있고, 독립적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몇 년간은 직장 생활로 맺어진 인맥도 있고, 이런저런 모임도 많아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70대로 들어서면서 건강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쾌활, 낙천은 사라지고, 부정과 불안이 생활을 지배했다.

    여기저기 증상이 생길 때마다 이 병원 저 병원 순례가 시작됐다.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하고 쿡쿡 아프다, 기침이 자꾸 나온다, 혀가 다 갈라졌다, 눈이 시리다 등 다양한 호소가 쏟아졌다. 특별한 이상은 없는데, 검사만 자꾸 늘어났다. 사소한 신체 문제도 죄다 질병으로 여기며 '의사 의존형' 사람이 됐다.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씩씩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를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고 한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초기 고령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그 시기에 와 있다. 이는 난생처음 늙어 보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신체 고령화를 모르기 때문이고, 노화와 질병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까닭이다.

    나이 들면 횡격막과 호흡에 쓰는 근육이 약해진다. 폐포와 폐 안의 모세혈관도 준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보다 산소가 적게 들어와 평소보다 과격하게 움직이면 숨이 찰 수 있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꾸준히 늘리면 숨찬 증세는 좋아진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 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다는 호소는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청소 효과를 내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 근육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는 없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고령에 위장은 더디게 움직인다. 탄성도 줄어서 음식이 조금 많이 들어오면 금세 부대낀다. 담즙 생산이 줄어 과거에 먹던 대로 기름진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우유를 흡수하는 젖당 분해 효소도 덜 생산돼 과한 유제품으로 속이 거북하거나 가스가 찰 수 있다. 대장은 더 느리게 움직여서 변 덩어리를 만들어주는 식이섬유 섭취가 줄면 변비가 오기 쉽다. 이런 것은 고령 친화적 생활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고령화 패턴을 알면 서로 편할 수 있다. 청력 감소가 그렇다. 나이 들수록 고음(高音)을 듣기 어려워진다. 노인성 난청일 때는 단어가 잘 안 들려 말하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것으로 오인하는데, 특히 모음보다 자음을 잘 못 듣는다. 자음은 단어를 식별하는 주된 소리인데, ㅋ·ㅌ·ㅍ·ㅊ 등 자음 대부분이 고음이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는 큰 소리로 말하기보다 자음을 또렷이 발음하는 것이 대화 소통에 도움이 된다. 청력이 많이 떨어진 부모에게 거실에서 "테레비 켤까요?" 하고 말하는 것보다 "에레비 결까요?" 말하면 입 모양과 모음을 듣고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다. 대개 톤이 높은 딸보다 저음인 아들 말을 더 잘 알아듣는다. 물론 나중에는 저음도 듣기 어려워진다. 고령자는 귀지가 쌓여 청력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고, 굵은 털이 귀 안에서 자랄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다.

    노화 현상을 모르면 노년의 건강을 망칠 수도 있다. 나이 들면 음식을 삼킬 때마다 인후가 기도 뚜껑을 닫는 조화로움이 둔해진다. 노인들이 자주 사레들리는 이유다. 게다가 노년의 골 감소증은 어느 정도는 숙명인데, 목뼈에 골다공증이 오면 머리가 앞으로 점차 숙는다. 이는 기도를 덮는 인후를 압박한다. 사레들리기 쉬운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기름 바른 인절미나 조랑 떡, 한입에 쏙 들어가는 젤리 등을 드시게 하다간 사달 나기 십상이다.

    무심코 건넨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 있다. 고령에는 간(肝) 세포 수가 줄고, 간으로 흐르는 피가 줄어든다. 화학 공정 역할을 하는 간 효소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 대사가 늘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약화(藥禍)가 일어날 수 있다. 어르신에게 섣부른 약 선물은 위험한 행동이다.

    인생 마무리 시기를 병원만 돌아다니며 지낼 수는 없다. 인생 마지막인 죽음 장소마저 병원에 의존하지 않는가. 메디컬리제이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병을 보는 지식과 삶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즘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말하는데, 고령 사회를 맞아 노년 교육 의무화가 더 시급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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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중의 명의와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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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화의 위기를 비즈니스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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