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정치가 할 일, 스포츠가 할 일

    입력 : 2017.07.10 03:15 | 수정 : 2017.07.10 08:36

    "南北 단일팀 하자" 잇단 구애… 그러나 교류는 정치가 받쳐줘야
    美·中 수교도 핑퐁 외교 힘 아닌 양국 간 화해 분위기 덕분
    스포츠 힘만으론 못 해낼 일… 평창 대회 성공 개최에 주력을

    김동석 스포츠부장
    김동석 스포츠부장
    지난 6월 23일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오자 우리 쪽에선 남북 교류 구애 러시가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동시 입장을 공개 제안했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구체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를 단일팀 종목으로 점찍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분단 이후 중단된 경평축구 재개 희망을 전했다. 남북 체육회담을 어서 진행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웅은 '스포츠 위에 정치 있다'는 한마디로 모든 사태를 정리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정곡을 찔렀다. 정치적 환경이 마련되기 전에 스포츠 교류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스포츠 행정 9단' 장웅에게 KO패를 당했다.

    한국 사회는 정권이 바뀌면서 집단 난독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우리는 그가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했음에도 이를 읽지 못했다. 장웅이 남북 교류에 계속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자 정부에선 '장웅 위원은 최종 결정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기 원하는 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는 전형적 희망 사고(思考) 심리다. 북한 스포츠에서 장웅 위라면 사실상 김정은밖에 없다. 정부 논리대로면 애초부터 장웅에게 남북 교류 제안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가 떠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다음에도 이낙연 국무총리는 "얼음 밑에도 강물은 흐른다"며 스포츠 남북 교류를 희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화합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정치적 환경이 무르익지 않으면 덧없이 끝나 버린다. 핑퐁 외교 덕에 미·중 수교가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미·중 간 화해 분위기가 있었기에 핑퐁 외교가 가능했다. 스포츠에 정치를 능가하는 힘이 있다면 핑퐁 외교보다 더 뜨거웠던 1991년 남북 단일 코리아 탁구팀 결성 이후 26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은 형제처럼 지내야 정상이다.

    물론 평창올림픽은 평화의 축제가 돼야 한다. 남북이 어울릴 수 있다면 더 좋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스포츠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머리 위에선 ICBM이 날아다니는데 북한 마식령에 평창올림픽 스키 훈련장을 마련하면 외국 선수단이 반기기는 할까. 북한에서 정치 선전 플래카드 한 장을 뗐다는 이유로 미국인 대학생 관광객 오토 웜비어에게 어떤 비극이 닥쳤는지 모두가 봤다. 우리 정부에 그런 리스크를 관리할 힘은 있는가. 스포츠는 평화의 선발대가 아니라 후발대다. 정치가 닦아 놓은 길 위에서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는 사절단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다. 남북 분산 개최는 고사하고 비용 절감을 위한 국내 분산 개최 제안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손님맞이 시설 개선 사업은 지역 내 상인들의 이해관계에 막혀 여전히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12개 올림픽 시설 활용 방안도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평창올림픽 때 딱 12일간 사용하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센터는 한 해 유지 비용만 27억원으로 추산된다. 올림픽 이후 37년이면 유지 비용이 1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건물을 바로 헐어 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 세계 18개 올림픽 슬라이딩센터 중 6개는 사후 관리 비용을 못 이겨 폐쇄된 상태다. 평창 알펜시아의 슬라이딩센터가 이런 운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이런 난제를 해결하고 올림픽 유산이 빛날 수 있도록 고민하는 데만도 남은 7개월이 부족하다.

    이제 우리도 평창올림픽, 넓게는 스포츠를 통해 남북한이 화해한다는 환상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그건 스포츠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가 할 일, 스포츠가 할 일이 따로 있다. 말(末)로써 본(本)을 움직이려 하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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