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만 파는 '우물 안 개구리' 안 돼… 미래는 교실 밖에 있다

    입력 : 2017.07.10 03:06 | 수정 : 2017.07.10 03:08

    한국 대표 젊은 과학자 3人이 말하는 미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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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준호·임영근 기자

    한국의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과학 발달로 세상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이 기술 흐름을 못 읽어 문을 닫고, 아이디어 하나로 세운 IT 스타트업이 산업계를 이끈다. 국가 미래가 과학 교육에 달렸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계는 미래 이공계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을까. 대학 및 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젊은 과학자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박문정 교수
    내 자녀 영재라면? 특목고 안 보내
    비슷한 아이들 모아두면 역효과


    ◇내 아이는 과학고 안 보낼 것

    박문정(40)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자에 속한다. 최근엔 미국 물리학회가 고분자 물리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를 한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딜런 메달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현재 그가 연구 중인 학문은 급속 충·방전이 가능한 대용량 리튬 전지로, 향후 전기 자동차 등이 상용화하면 수요가 크게 늘 분야다. 그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큰 힘이 된 건 경기과학고 재학 시절의 경험이다. 과학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뒷받침하는 환경에서 전공에 온 집중을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자기 학문에만 몰두해서는 남다른 성과를 내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보통 과학고나 영재고는 사회 등 전공 외 과목 비중을 일반고보다 작게 둔다. 박 교수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미래 연구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 분야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관심사 비슷한 친구끼리 모여 있으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져요." 그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동료와 지내며 세상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남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세상에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탐구심을 키우고 연구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저만 해도 정치·경제·세계사·음악 등 많은 분야를 더 깊이 알았더라면 연구 소재도 다양해졌을 겁니다. 지금처럼 한 분야에만 매몰되는 영재학교 체제가 지속한다면요? 다섯 살짜리 제 아들이 혹시 영재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절대 그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겁니다."


    오성진 연구교수
    문제풀이식 수학, 싫증날 수밖에
    생활 속 쓰임새 알아야 흥미 찾아


    ◇수학, 쓰임새 깨닫고서야 흥미 느껴

    "고교 1학년 때까진 수학에 별 흥미를 못 느꼈습니다."

    오성진(28)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교수가 뜻밖의 얘기를 했다. 오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 한국과학영재학교 시험을 치른 뒤 중 3 과정을 건너뛰고 입학했다. 이후 한국과학영재학교를 2년 반 만에, 카이스트를 2년 만에 각각 졸업했고, 미 프린스턴대 석·박사를 취득한 뒤 UC버클리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수재다. 최근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오는 가설을 수학적으로 검증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다. 그런 오 교수가 "내게 수학은 늘 어려운 과목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누구도 '수학은 이렇게 쓰이는 학문'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초·중학교 때 선행 학습을 하려고 수학 학원에 다닌 적 있지만, 기계적으로 문제만 풀게 하는 바람에 지루해져 오히려 수학을 멀리하게 됐다. 주변 친구들이 다 푸는 문제를 혼자 틀리기도 했다. 당시 좋아했던 과목은 화학이다. 오 교수가 수학에 흥미를 느낀 건 '왜 배우는지' 알았을 때다. 고교 2학년 때 '행렬 곱셈'이 컴퓨터 그림 파일을 늘리거나 줄일 때 활용된다는 걸 안 순간 '수학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그날부터 수학 시간이 즐거워졌다. 수학 문제 하나를 놓고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밤새 토론하는 일도 잦아졌다. 화학 영재가 수학자를 꿈꾸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는 "일선 학교에서도 수학을 그렇게 가르치면 좋겠다"고 했다. "뜻 모를 공식을 암기하게 하는 건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수학 학습을 시작하기 전, 해당 단원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주면 학생이 먼저 흥미를 보이지 않을까요."

    유남경 연구원
    다양한 경험 통해 소통 능력 키워야
    학생 정서 관리하는 멘토링 필요


    ◇과학자 필수 역량은 책상 앞에서 못 키워

    미국 스크립스연구소는 세계 최대 민간 비영리 생의학연구소다. 유남경(32) 연구원은 서울과학고·서울대 생명과학부를 나와 이곳 화학생리학부 연구실에서 근무 중이다. 주로 단백질을 활용한 신경 질환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유 연구원은 과학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논리적 사고·이해력·끈기 등이 중요했지만, 앞으론 우수한 성과를 내려면 더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됐다. 그중 하나가 의사소통력이다. 그는 "기술 발달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면서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협업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됐다. 이제는 아무리 뛰어난 한 명의 천재라도 여러 두뇌가 힘을 모아 내놓은 결과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따라서 공동 작업을 원활하게 하는 의사소통능력이 실무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이 같은 역량은 책상 앞에서 문제집을 풀며 키울 수 없다. 그는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이라면 어린 시절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배우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학원에서 입시 맞춤형 교육을 받으면 영재학교 입학이라는 단기 목표는 달성할 수 있지만 평생 연구에 필요한 능력을 갖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고에 멘토링 프로그램을 충분히 공급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부 잘하는 이들만 모인 학교에선 자기 능력을 의심하고 때론 낙오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 연구원도 과학고 진학 후 시험에서 낮은 성적을 받는 바람에 2년가량 방황했다. 유 연구원은 "학생들이 자기만의 강점을 찾아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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