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일본 중의원 총선거 사흘 후 도쿄에서 한 여성 정치인이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길게 자란 머리를 싹둑 잘랐다. '고이케 유리코의 단발(斷髮)식'이라 명명된 이벤트였다. 그 3년 전인 2009년 자민당은 총선에서 '역사적 대참패'를 당해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다. 평생 숏컷을 고집해왔다는 고이케는 자민당이 권력을 찾아올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3년이 걸렸던 것이다. '와신상담 헤어'라는 말까지 생겼다.

▶고이케는 일본에서 대학에 들어갔다가 이집트로 떠나 카이로대학을 나왔다. "아랍어가 유엔 공식 언어가 된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아랍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한다. 1970년대 초에 그런 결심을 했으니 보통 사람은 아니다. 돌아와 아랍어 통역을 하다 20대 후반 방송 캐스터로 데뷔했다. 리비아 최고 지도자 카다피를 여러 차례 만났고 그의 집무실에 들어간 일도 있다.

[잇단 부패스캔들과 정권의 독선… '아베 피로감' 커졌다]

▶마흔 무렵 호소카와 총리를 방송 진행자와 출연자로 만난 게 정계 입문 계기였다. 변신을 거듭해 오자와 신진당 대표 측근으로 통했고, 고이즈미 총리가 2005년 총선에서 야당 거물들을 겨냥해 정치 신인을 대거 공천했을 때 '자객 1호'를 자처했다. 그러더니 2006년 총리가 고이즈미에서 아베(1차 내각)로 바뀌자 그의 측근이 돼 있었다. 아베는 그를 총리 안보 담당 특보, 방위대신으로 연달아 기용했다. 여성 방위대신 1호였다. 독자 핵무장 주장 등 우익 면모를 보이기는 했으나 이때만 해도 주축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외모와 쇼맨십이 출중한 여성 정치인이라는 정도였다.

▶그의 정치적 체급이 달라진 건 작년 도쿄도(都)지사 선거 때였다. 자민당이 다른 사람을 공천하려 하자 독자 출마를 선언해버렸다. 아베와 자민당은 고이케를 돕는 자민당 사람은 모두 제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도쿄도민(都民) 퍼스트'라며 생활 정치를 내건 고이케는 자민당 후보를 112만표, 17.1%포인트라는 압도적 차이로 제쳐버렸다. 게다가 여성 최초였다.

▶고이케가 그제 열린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아베 총리에게 또 한 방을 먹였다. 127석 중 고이케가 만든 정당과 연합 세력이 79석, 자민당 23석이었다. 잇따른 스캔들에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던 아베가 "반성한다"고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자신이 키운 사람에게 당했으니 더 기가 막혔을 것이다. 아베의 독선과 독주가 부른 참극이라는 분석과 함께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선거 혁명과 맥을 같이한다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고이케발(發) 태풍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