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내가 반대를 시작하면 세게 한다… 박 前 대통령도 날 골치 아파했다"

    입력 : 2017.07.03 03:03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나경원과는 대학 친구, 정치판에 들어와서는 말 안 나눈 게 15년 더 돼… 언론에 다 말하기 어려워"

    "직장 다닐 때 주말 산행에 만삭 몸으로 꼼짝없이 나가야
    주차장에서 진통이 와 등산복 차림으로 응급실 가…"

    금요일 저녁 이낙연 총리가 총리 공관으로 바른정당 지도부만 따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다. 이혜훈(53) 바른정당 대표를 만난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술을 얼마나 하나?

    "한 방울도 못 마시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 알코올 근처에만 가도 취해서 실제 마시는 사람들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이혜훈 대표는“여성으로 이 땅에 살면서 너무 부당한 일을 겪어 정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혜훈 대표는“여성으로 이 땅에 살면서 너무 부당한 일을 겪어 정치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이 총리와 무슨 대화를 나눴나?

    "이 총리는 노련하다. 정치적인 얘기는 안 하고 가벼운 농담만 했다. 내게는 '당선될 거라고 선거 전에 내가 말했던 걸 기억합니까'라며 덕담을 건넸다."

    ―'협치(協治)를 하겠다'는 이 대표의 당선을 환영했을 거다.

    "사안에 따라 협조는 하겠지만, 좀 지나면 후회할 것이다(웃음). 내가 반대를 하기 시작하면 세게 한다. 알다시피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나를 골치 아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왜 골치 아파했나?

    "새누리당 최고위원 시절 내가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왜 이행하지 않느냐'는 발언을 계속 하니 안 좋아했다. 청와대 핵심이 그만하라고 전화를 두 번 걸어왔다.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 공공기관장으로 가라는 제안도 했다. 나는 어떤 일이든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다."

    ―2012년 대선 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며 비대위원 인선안이 사전에 유출될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촉새가 이 대표라는 설이 돌았다. 그 일로 박근혜에게 밉보여 떨려 나간 걸로 알려져있는데.

    "그때 언론에 유출한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걸로 밝혀졌다. 내가 사석에서 박근혜를 둘러싼 보좌진이나 비선(秘線)과 관련해 비판을 가끔 했다. 이런 말이 보좌진에게 들어갔을 것이다. 박근혜에게는 보좌진의 보고(報告)가 세상 창구였으니 당연히 나를 멀리하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열성 친박(親朴)'이 작년부터 박근혜 공격에 앞장섰다. 이런 경우 인간적인 딜레마가 있지 않나?

    "인간적인 관계를 의식하면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그러면 정치하기 어렵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도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의리, 온정 같은 덕목이 요구되지 않나?

    "조폭처럼 개인 의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인은 박근혜가 아니라 국민이다. 그분의 현 상황이 안타깝지만 사사로운 것을 더 중시하면 안 된다고 본다."

    ―이 대표에게 따라붙는 인간적인 문제인데… 보수신당 합류를 철회한 나경원 의원에 대해 '원내대표직을 안 준다고 오지 않았다'며 들춰내 공격했다. 둘은 오랜 친구로 알고 있다. 아무리 정치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경원이 먼저 '보수신당은 유승민 사단이고 어떻고…'라며 언론에 떠들었다. 창당 작업을 망친 3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와 대학 친구였으나 정치에 들어와서는 말을 안 나눈 게 15년이 더 된다. 언론에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다. 그런데 인터뷰 목적이 나경원·조윤선과의 관계에 대한 건가."

    ―같은 당에서 주목받던 여성 정치인 3인의 경쟁과 불화가 왜 궁금하지 않겠나?

    "언급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많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싫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은 본인이 많이 당했다는 뜻인가?

    "근거와 사례가 많다.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하면 말할 수 있다."

    ―이번 전당대회 동안 "이혜훈이 당대표가 되면 당이 깨진다"는 말이 돌았다. 당대표 선출 때 김무성 의원은 아예 불참했는데?

    "그분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잘 알고 있다. 당선된 뒤 만나주지 않아 약속 없이 찾아가 '도와주십시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라고 했다."

    ―그 전에 라디오에 출연해 김무성을 대놓고 비판한 것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바른정당 연찬회 때 지도부 선출 문제로 갑론을박이 있었다. 당헌 당규대로 전당대회를 열어 당원 투표로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비상 시국이니 합의 추대해 비대위 체제로 가자고 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그 뒤 라디오에 출연해서 나도 그렇게 말했다. 그날은 김 전 대표가 공항에서 '노룩 패스'로 구설수에 오른 날이었다. 다음 날 김 전 대표가 당 최고회의에 참석해 공개적으로 '나는 비대위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며 내 인터뷰를 문제 삼았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본인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할 말은 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할 말은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김 전 대표가 불편하게 느꼈으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바른정당은 의원이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교섭단체가 깨지는 상황이 온다.

    "그렇게 안 되도록 백번 천번 무릎 꿇겠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네가 당선되면 내가 탈당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와전된 것이다'라고 했고, 나는 '매일 출근하듯이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유승민계가 밀어 당대표가 된 게 맞나?

    "그렇지 않다. 유승민 의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끝까지 유승민 곁에 있었는데?

    "당 후보를 돕는 것은 당원의 도리다. 흔드는 게 잘못이다. 유 의원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함께 근무했고 30년쯤 됐다."

    ―대선 당시 보수 진영의 단일화 요구에도 유승민은 완주했다. 본인의 철학이 어떻든 보수 분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大)를 위한 희생과 포용력, 정치력에는 의문을 낳았다.

    "어차피 보수가 패배하는 선거였다. 낡고 부패한 친박 세력과 손잡아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그들에게 또 기회를 더 주라는 건가. 제2의, 제3의 박근혜를 만들어야 하는가. 오히려 보수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미래 집권 세력으로 신뢰를 얻는 게 더 중요했다고 본다."

    ―유승민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잘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대통령감인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

    "그는 콘텐츠가 있다. 그의 스킨십, 친화력에 대해 비판하나 그것만이 대통령 자질과 덕목이 아니다. 우리 정서나 기류에서 그런 스타일로 대통령 되기가 험난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잘할 사람이다."

    ―김무성은 당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보수신당을 구상했다고 밝혔는데?

    "우리는 보수 가치와 바른 정치를 위해 나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데, 누굴 대통령 만들기 위해 당을 만들었다니… 대선 과정에서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진짜 보수 정당이라고 내걸었지만 유승민의 득표율은 6.8%에 그쳤다. 보수층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유권자들이 가짜 뉴스인 '배신자' 프레임에 속은 것이라고 본다. 그 프레임은 정말 온당하지 않다. 이를 씻어내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

    ―이 대표는 '자강론(自强論)'을 주장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견제를 위해 지리멸렬한 보수당의 통합이 우선 아닌가?

    "우리 당이 제대로 서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로 보수의 본진(本陣)이 되겠다는 각오다."

    ―일년도 안 남은 지방선거에서도 또 보수 통합 없이 가겠다는 것인가?

    "자유한국당의 변화가 없는 한 통합은 어렵다. 다만 그쪽 당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모셔오겠다."

    ―희망은 가져야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봐야 한다. 당내에서 통합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바른정당이 스스로 소멸될지 모른다.

    "물론 국민이 선택할 거다. 자유한국당 같은 극우 수구 세력이 보수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나는 옳은 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겠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UCLA 경제학 박사다.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과 영국 레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했다. 그는 2002년 시아버지(김태호·4선과 내무부 장관 역임) 지역구인 울산 중구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시아버지가 "세 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맏며느리가 하면 잘할 것 같다"며 밀었다는데?

    "내가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다. 귀국 직후 시댁 일로 시아버지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때는 정치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치에 마음먹은 것은 여성으로 이 땅에 살면서 너무 부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좋은 집안, 좋은 학교에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여성 중 한 명인데 그런 불만이 있나?

    "여성으로 살아봤으면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정치를 시작했다. 여성은 직장에서 퇴근해도 출산·육아·가사가 남아있다."

    ―과거 인터뷰를 보니 남편(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이 잘 도와주는 걸로 나와있던데?

    "아이들 학원 보내는 것뿐이고, 어떻게 집안일을 다 맡겠나. 과거 KDI 직장에서도 참지 못할 일이 많았다."

    ―일반 대기업보다 근무 환경이 좋을 텐데?

    "상대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여자는 뽑으면 안 돼. 임신·출산휴가 쓰고 언제 일하나'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이런 직장 분위기에 '셋째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주말에 도봉산 산행이 예정돼 있었다. 만삭의 몸으로 꼼짝없이 나가야 했다. 주차장에서 진통(陣痛)이 왔다. 등산복 차림으로 응급실로 갔으니 의료진은 미친 여자로 봤을 것이다. 출산 후 전화로 직장에 결근 사유를 말하니, 그때 나오는 반응이 '출산휴가를 쓰려는 거냐?'라는 것이었다."

    ―그때 같이 일했던 상사·동료의 문제지, 그게 직장의 보편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그 일로 KDI를 그만뒀나?

    "왜 그만두나, 이를 악물고 일해야지. 출산휴가를 마친 뒤 처음으로 여성 모임과 단체를 찾아다녔다. 나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해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하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지역구 경선에서 맞붙은 조윤선 전 장관이 이 대표에 대해 '저돌적이다'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본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해야 되겠다 싶으면 남의 말 안 듣고 막 간다. 이 때문에 욕을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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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정당 새 대표에 이혜훈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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