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금요일의 남자' 국민예능 PD 나영석 인터뷰

    입력 : 2017.06.30 16:08 | 수정 : 2017.07.05 15:10

    나영석 PD를 만난다는 건 현재 가장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를 ‘섭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인터뷰 신청자 리스트가 잔뜩 밀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KBS ‘1박 2일’로 예능계에선 불가능하다는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기록을 세웠고, CJ E&M으로 이적한 뒤에도 예능계를 뒤집을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그랬던 그를 만났다. 칸 광고제 출장 이후 잠시 짬을 내, 평소처럼 마법을 부리듯 시간을 ‘만들어냈다.’

    나영석 표 ‘자막’이 그렇듯,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말이 끊이지 않을 줄은 몰랐다. 프로그램 편집의 달인으로 알려진 것처럼, 대화도 마치 편집을 해내듯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맺고 끊는 기술이 있었다. 웃음 포인트도 살짝살짝 집어넣으며 완급을 조절했다. 한 시간여 인터뷰를 정리하고 나니 원고지 100매 가까이였다. 빠른 말투로 마치 준비해왔다는 속내를 털어내는 데, 손목이 다 지끈거릴 정도였다.

    ‘예능계 미다스 손’ ‘국민 예능’ ‘섭외의 신’ ‘나영석표’…. 나영석(41) PD를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이 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금요일의 남자’. 2013년 7월 5일 금요일에 포문을 연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시작으로 ‘삼시세끼’ ‘윤식당’ 등 연타석 홈런을 치며 시청률 사각지대였던 금요일 밤을 가장 뜨거운 예능 격전지로 만들었다. 문화 섹션 ‘프라이데이’가 전국 1만25명에게 ‘금요일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물은 조사에서도 ‘나영석’ ‘tvN 시청’ ‘나 pd’가 적지 않게 언급됐다.

    ‘프라이데이’는 창간호를 맞아 우리에게 금요일 밤의 ‘웃음’을 선사한 나영석 PD를 26일 서울 상암동 CJ E&M사옥에서 만났다. 얼마 전 칸 광고제 발표에 이어 ‘알쓸신잡’(알아둬도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 촬영과 새로 들어갈 ‘삼시세끼 어촌편 4’ 준비 때문에 주말도 없다는 그가 잠시 짬을 냈다. 금요일 밤 가족을 오순도순 TV 앞으로 모이게 한 ‘예능계 연금술사’라지만 정작 본인은 남들 같은 주말을 누리고 싶은 ‘회사원’이라며 해사하게 웃는다.

    삼시세끼 아이디어 10년 전부터 가졌지만…트렌드는 ‘타이밍’

    ―최근 칸 광고제 발표로 화제였어요.
    “화제요? 아는 사람 별로 없을 텐데요?”

    ―뉴스에 많이 실렸어요. 이서진씨와 함께 했던 발표 영상도 많이들 조회했고요.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글로벌한 발표 자리에 도통 설 일이 없잖아요. 세계적으로 주류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라도 아니고,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강연 들으러 와서 관심 갖고 듣는 거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사실 강연 내용은 별거 없잖아요. 삼시세끼의 탄생 이야기인데, 그걸 듣고 공감해주는 외국인도 많아서 기분 좋았다가 쑥스럽기도 했고요.”

    ―꽃할배, 삼시세끼, 알쓸신잡 같이 사회 트렌드에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작품으로 매번 히트에요. 트렌드를 어떻게 읽어내나요?
    “제가 그런 트렌드를 읽는데 엄청 뛰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지금 방영중인 프로그램이 ‘신서유기’ ‘알쓸신잡’ 차기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팀 이렇게 세 팀 정도가 있는데, 저희 프로그램 전체 ‘단톡방’을 보니까 49명이나 있더라고요. 지금처럼 대규모로 일해본 적이 없어요. 저희들은 대부분 프로그램 만들 때 원칙은 정해놓고 있죠. 어떤 걸해야 사람들이 봐줄지를 고민하는 거죠. 저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요?
    “저희가 하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밥해 먹는 것도 그렇고. ‘알쓸신잡’ 같은 것도 사실 새로이 시도하는 것도 장르도 아니고. 저희 프로그램에 굉장히 독특한 장치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녹아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다만 문제는 타이밍인 거죠. 이 세상 모든 예능 프로그램 회의 시간에,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얘기는 다 나왔을 거라 생각해요. 하느냐 마느냐 선택의 문제인 거죠. 너무 빨라도 외면당하고 너무 늦으면 레플리카가 되니까. 이제는 기운이 무르익었구나, 이제는 누군가 터트려 줘야겠다 하는 시기를 읽는 게 트렌드를 읽는 것인데. 저 혼자는 모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느 날은 별 반응 없다가 다시 이야기했는데 공감하는 친구들이 두세 명에서 대여섯 명이 신나서 이야기하고, 그러면 지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삼시세끼’도 KBS 있을 때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거든요. 그때는 사정이 있어 못하고 있다가 ‘꽃청춘’ 찍을 때 어떤 계기로 ‘이제는 이런 거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계기요?
    “사람들이 휴식을 강렬하게 원한다는 걸 느낀 거죠. 하지만 이렇게 바쁜 현대사회에서 휴식을 본인이 직접 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대리만족이 필요할 수 있는 시기다. 과연 어떤 종류의 휴식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거에요. 그런데 그냥 TV 속에서 놀고먹는 휴식은 더는 안보거든요? 그전에도 괌 사이판 같은 휴양지에서 노는 프로그램은 정말 많았어요. 다른 종류의 휴식이 필요하겠다 생각했죠. 제일 처음 계기는 제작진에서 나와요. 애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지쳐 하고. 왜 힘들어할까 보면, 우리만 지친 걸까? 하고 밖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도 그런 거 같고. 그때 딱 감이 오는 거죠. 휴식이라는 게, 너무 많은 걸 했기 때문에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강렬히 원할 수 있겠다. 그런 걸 보고 싶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요. 꽃청춘 끝나고 쉴 기간이었는데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아 급하게 시작했죠. 기운이 차오르는 시점이 있어요.”

    ―기운이 차 오른다?
    “비이성적으로 느낄 수도 있는데,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알쓸신잡’을 하기 전에 2년 전부터 주변에서 ‘팟 캐스트라는 게 있는데 너무 재밌다’는 얘길 들었어요. 바빠서 다른 방송도 못 보는데 그런 거 챙겨 들을 여유가 전혀 없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또 ‘요즘 팟캐가 제일 재밌어’ 이런 얘기가 들려와요.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고 회의 시간에 터져주고. 회의에 있는 친구들은 들이 이걸 듣는구나. 회의시간에 나온 애들은 트렌디한 애들이니까 ‘어 지금인 것 같다. 해보자’ 하는 것이죠.”

    “금요일의 남자? 아빠 떼놓고 외국 가서 살아도 좋다는 딸아이 말에 충격”

    ―PD님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금요일의 남자’에요. 금요일 밤을 가족형 예능 시간대로 만들었다는 거죠.
    “그거 회사에서 시켜서 한 거에요(웃음). 예상외로 제가 하는 많은 일은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에요. 처음에 전 싫다고 했죠. 아무도 안 들어가는 시간에 왜 들어가느냐면서도. 그런데, 제 자랑 같지만 제 장점 중 하나는 남의 말을 되게 귀 기울여 들여요. 그리고 전문가에겐 전문가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설사 기분 나쁘고 힘든 일이라도 그렇게 확신하는 건 전문가적 견해가 있을 거라 믿는 거죠.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에요. 이번 ‘알쓸신잡’으로 캐스팅하는 데 정재승 교수님 스케줄 너무 바쁘신 거에요. 공동 연출하는 PD후배가 김영하 작가, 정재승 교수 섭외를 맡았는데 도저히 정 교수님 스케줄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전 바꾸자고 했죠. 그런데 후배가 정재승 교수님으로 가야 된다는 강한 확신이 있더라고요. 후배들이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했는데 대박 나는 것도 많아요. 그 친구들도 전문가인데, 그들의 판단 기제가 강하게 들어가면 거기에 베팅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죠.”

    ―입사 전에 코미디 작가 응모도 해 보셨다지만 그간 인터뷰를 보면 항상 ‘사람’을 강조해왔어요. 프로그램 스타일도 그렇고 예능 쪽이 아니라 교양이나 다큐 쪽에 관심 많을 것 같은데 왜 예능을 택한 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 세계라고 말하긴 쪽팔리지만(웃음) 저라는 사람도 변하잖아요. 저는 대학생 때 연극반에서 연극하고 PD로 입사하면서도 목적의식이 굉장히 뚜렷했어요.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거죠.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믿었어요. 어린 시절 김영희 선배님 작품에 푹 빠져 있었어요. 정지선을 지키자, 같은 건 일종의 캠페인이잖아요. 유익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저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나 감탄했죠. 초창기 1박2일에선 별거 다했어요. 독도에서 물 떠다 백두산에 붓기도 하고. 굉장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었던 거죠. 통일에 대해서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다. 이슈를 던지고 싶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다 똑똑해요. 답을 던져주길 원하지 않더라고요. 어떤 계기를 던져주면 그걸 알아서 하는 방식인 거죠.”

    ―각자의 생각을 열어준다는 거죠?
    “엊그제 알쓸신잡 촬영을 하는데 김영하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예상외로 소설가가 주제의식을 갖고 소설을 쓰는 게 아니래요. 소설을 보면서 즐기기를 바라지, 소설을 가지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문제를 풀면 통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참 와 닿았어요. 목적의식을 갖고 만드는 게 어느 순간 촌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옛날처럼 국민들 계도해서 한 단계 나은 레벨로 끌어올려야 하는 건 생각 안 한 지 오래됐고요(웃음) 심플해지고 쿨해지는 중이에요.”

    ―저는 오히려 거꾸로라고 생각했거든요. 여행으로 가려운 곳을 풀어주고, 거기에 요리도 넣고, 유사 가족 형태를 응용하고, 페이크 다큐가 많으니 진짜 부부를 등장시키고, 이젠 여행에 요리에 식당 열어 경영까지 하고. 하나씩 더 집어넣고 복잡해진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요. 사람들이 심플하고 쿨 한 척하지만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드웨어적으로 시골에서 밥 해먹는 게 있다면 소프트한 쪽으로는 어르신을 모시고자 하는 좋은 마음이 투영되는 것이죠. 예능에서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게 분명히 있어요. 이서진이 어르신을 모시는 걸 보고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이죠.”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끄집어 내는 거네요?
    “우리 집은 좋은 집안이 아니더라도 막말로 막장일지언정 우리가 가정을 훈훈하게 꾸미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욕망인 거죠. 좋은 가족, 좋은 남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게 제일 근원적인 욕망이에요. 그래서 이서진씨가 차승원씨보다 시청률이 안 좋은 게 아닐까요. 서진이 형은 틱틱 거리거든요.(웃음) 해진이형이나 승원이형은 따뜻한 모습이죠. 서진이형은 그런 걸 ‘오그라든다’는 식이어서 전 그게 더 리얼하고 재밌다고 하는데, 시청률의 추이는 또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윤식당’을 할 때는 서진이 형이 그 역할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시청률도 굉장히 높았거든요. 사람들이 여전히 이런 걸 보면서 대리 만족하고 무언가 해소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관점에서 PD님은 좋은 사람,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인가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집에서 TV 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은 하겠지만 실체는 다르겠죠. 이번에도 칸 출장을 일주일 정도 아내(홈쇼핑 채널 PD)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딸에게 ‘아빠 떼놓고 외국 가서 살까’ 했더니 ‘응’ 그러더라는 거에요. ‘아빠 보고 싶지 않아?’ 물으니 ‘뭐 어차피 만날 출장 가는데’ 했다는 거죠.”

    ―당황하셨겠어요.
    “주말은 저도 쉬려고 노력하는데, ‘알쓸신잡’을 주말에 촬영해서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제 방송은 물론이고 다른 방송 챙겨보고 해야 되는데 인터넷 기사로만 이런 거 했나 보다 이런 거 체크만 하고 원본은 보지도 못하죠. 딸아이에겐 더 미안한데, 또 하루 ‘빡세게’ 놀아주면 ‘아니야 역시 아빠가 좋은 거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애가 하자는 거 하고 놀아요. 놀이터도 같이 가고 카드 게임도 하고. 조금 충격이지만 크게 생각하진 않아요. 아직 어리니까 상황 판단을 못 해서 그리 말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웃음).”


    “이서진, 이승기씨 친해도 사석에선 잘 안 봐요.”

    ―연예계가 참 복잡하다고들 하는데 사람과 오랜 시간 인연을 지켜왔어요. 강호동씨도 그렇고, 이승기, 이서진씨 모두 오래가잖아요. PD님만의 비결이 있나요? 인맥 관리 같은 거요.
    “아니요. 연예인은 사석에서 거의 안 만나요. 사석에서 만나는 분들은 어르신들, ‘꽃할배’했던 어르신들이나 여정 쌤(윤여정)이요. 물론 이따금 만나긴 하지만 제가 자주 연락을 하거나 살갑게 지내고 그러지 않아요. 다만 동료로서의 신뢰 같은 건 있죠.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제가 누구 덕분에 이 프로그램이 잘됐다 하면 다음에도 같이 가려고 하죠. 소위 말해 ‘빼먹을 만큼 빼먹었으니 갈고 가자’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공이 분명히 있는 거거든요. 제 입장에서 공인 거지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재능인 거에요. 그 프로그램에 맞는 재능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지겨워한다 싶으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건 어떨까. 하게 되는 거죠. 저는 꽤 감상적인 사람이지만, 인연이나 정만으로 그 사람을 계속 기용할 정도로 감상적이지는 않아요. 저도 딸린 식솔들이 많아요.(웃음) 요즘 제작 환경이 그런 게 가능할 정도로 녹록한 게 아니고요. 전략과 생각과 확신이 있으니 그 스태프를 쓰고 그 작가와 연예인과 일을 하는 거죠.”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도 탁월해요.
    “섭외할 때 주변 조사를 많이 해요. 막말로 특 A급이 오신다, ‘어서 오세요 이미지 잘 만들어 드릴게요’ 하죠.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요. 제가 국정원도 아니고(웃음) 뒷조사 같은 건 아니고, 성격이 어떤지 모나지 않았는지 같은 걸 보죠. 원래 있는 인성을 끌어내는 거죠. 그래서 포장을 해주는 거지 제로에서 뭘 만들어내지 못하거든요.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이 탑재돼 있는지를 면밀히 보죠. 우리끼리는 ‘연못에 돌을 던진다’고 표현하는데.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여행 보내는 것처럼 평소와 다른 상황에 놓으면 돼요. 그걸 우리는 ‘캐릭터’라고 부르죠. 한국적 작법이기도 해요. 한국인은 사람한테 관심이 많고 저 사람이 착한가 아닌가를 따지거든요.”

    ― ‘나영석 사단’이란 말도 있잖아요.
    “연예인 캐스팅처럼 피디나 작가도 마찬가지에요. 개발시켜주는 건 선배들 몫인 거죠. 주변 이야기도 듣고 관상도 봐요.(웃음) 십년을 하다 보니 대충 이렇게 생긴 애들이 잘하더라 하는 패턴이 있어요. 분위기랄까. 약간 좀, 나사 하나가 빠진 거 같은 애들이 잘해요. 하하. 아주 밝은 친구들보다 어두운 애들이 잘하고, 그렇다고 예술가인 양 하는 건 아니고요. 복잡 미묘한 지점이 있는데 어디서 누가 후배 뽑는 비결을 물으면 그냥 ‘관상 봐요’ 해요. 정말 반은 맞는 얘기에요.”

    ―편집 잘하기로 유명한데, ‘삼시세끼’도 후배 6명이 나눠서 편집하고 자막도 담당했다 했어요. 그중에서 재미없는 부분도 있을 텐데 다시 기회를 주고 맡긴다고 했더라고요.
    “후배를 키우는 게 진짜 큰일이에요. 좋은 작가 좋은 피디를 키우는 게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돼요. 저의 명망을 높이고 저의 성공률을 높이고(웃음). 아직까지는내 이름으로 포장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노고를 모아 모아 내 이름으로 내놓아서(웃음) 그래서 허투루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조건 기회가 널린 것도 아니고, 제가 세상 좋은 리더라서 모든 애한테 그렇게 대하는 것도 아니에요.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는 특정 재능이 필요하거든요. 그게 아니라면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게 맞아요. 가능성이 있는 친구에게 다음 기회를 주고 공들여 키우는 거죠. 그런데 그 친구가 고마워도 하고, ‘선배가 믿어줘서 여기까지 왔어요’ 하면 ‘내가 좋은 사람인가? 하하. 괜찮은데?’하기도 하고요. 결원이 생기면 그만큼 고민인 건데, 후배를 데려올 때 굉장히 고심을 해요. 도드라진 친구 없냐고 탐문을 하죠.”

    ―예전 인터뷰를 보니 밥차하는 아줌마가 어디서 주무시는지도 다 챙긴다고 했는데요.
    “하하. 그건 착해 보이려고 한창 신경 쓸 때 한 얘기고요. (웃음) 요즘 저의 제일 큰 관심사는 사람이에요. 연예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그 결과물일 뿐인 거고요. 옛날엔 제가 제일 중요했어요. 이우정 작가와. 우리의 재능이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요. 하지만 지금은 후배 피디들과 후배 작가와의 콜라보라 할까요.”

    “윤여정 선생님, ‘더 크기 전에 실패해 봐야 한다’고 말해”

    ―2007년 시작한 KBS ‘1박2일’ 이후 10년째 예능 왕좌를 지키고 있어요.
    “작년부터 올 초까지 굉장히 방황했어요. 꾸리는 팀이 셋이나 되니까 이 팀에서 일하다 저 팀 돌보고, 일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듯했거든요. 저는 굉장히 몰입해서 일하는 스타일이에요. 하나하나 다 챙겨서 하는데 어느 순간 그 스타일을 포기해야 되는 거에요. 일이 너무 많아지니까. 일이 끝나면 항상 복기하는데, 그래도 정말 자랑스러운 건 올해 새로 한 세 작품, ‘신혼일기’ ‘윤식당’ ‘알쓸신잡’이 옛날부터 함께 일했던 후배들 입봉작(연출 데뷔작)이에요. 그들의 작품인 거죠. 그들 아이디어로 시청률이 십 몇프로 나오고 하는데 신기하고 대단하죠. 물론 나의 절묘한 판단과 상황 정리 능력이 당연히 들어갔겠지만(웃음), 진짜 기뻐요. 대견하고.”

    ―시청률이나 댓글반응이 아직 예민한 문제긴 한가봐요.
    “그거를 신경 안쓴다고 하면 100% 거짓말인데다 직무유기 같은 거죠. 저희는 문화상품을 시청자에게 파는 사람이에요. 소비자가 이 상품이 문제가 있는 거라는 데, ‘다 생각있어서 만드는 거다’라고 버튕기면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미친 놈이죠. 당연히 신경써야죠. 여러 가지 댓글도 방송 커뮤니티 반응도 체크하고 주변 반응도 보고 택시 기사님하고 얘기도 해보죠.”

    ―실패라 건 없어 보여요.
    “전에 윤여정 선생님이 ‘더 크기 전에 실패해봐야 한다’고 했던 적이 있어요. 아주 큰 교훈이었어요. 망할 때가 오겠죠. 당연히 올 거고. 근데 이제는 망하기도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이제는 저만의 판단이 아니기 수많은 사람의 판단이 총합이거든요. 나영석 사단이라는 게 누가 먼저 꺼낸거진 모르지만 저만의 판단이 아니라 모두를 끌어모은 거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확률은 떨어져요. 모두가 합의한 게 나갈 테니까. 단점은 개성이나 올곧은 색깔 같은 게 사라지겠죠. 제가 실패하게 된다면 어느 날 팀의 판단을 믿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때일 거에요.”

    ―실수도, 구설수 같은 것도 거의 없었어요.
    “매일 시청률과 싸우는데요. ‘나영석 망가지는구나’라는 소리 듣는 게 두려워요. 이 업계가 그래요. 피도 눈물도 없는(웃음).”

    ―희생된 적은 없잖아요.
    “속앓이한 적은 있죠. 예능이 천시된다 생각했어요. 막말로 우리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게 얼만데. 드라마는 끝나면 포상 휴가 가는 거에요. ‘열 몇 편 찍고 저렇게 놀러 가도 되는 거야? 우린 1박2일을 5년째 해도 하루도 제대로 못 쉬는데?’ 하며 속으로 투덜댔었죠. 그들은 영광스러운 엔딩을 하는데, 예능은 영광스러운 시기는 있어도 시청률 낮으면 소리 소문 없이 폐지되는 게 운명이에요. 찌그러져야 끝이 나죠. 고생했던 출연자, 스태프 서로 민망해서 얼굴도 못 쳐다봐요. 요즘은 많이 바뀌었어요. CJ 와서 시즌제를 만들었어요. 명확한 엔딩이 있죠. 요즘처럼 연예인들과 회식해본 적이 없어요. ‘수고하셨어요’ 하고 웃으며 후일담을 나눌 수 있는 게 너무너무 행복해요.”

    내 꿈은 ‘오늘의 요리’ 같은 프로그램을 찍는 일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여행을, 유사 가족 형태인 ‘삼시세끼’를 통해 유대감과 요리를, ‘윤식당’을 통해 매출 걱정 없이 해외서 식당 차리고픈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구석구석 채워줬어요. 나PD님의 판타지는 무언가요?.
    “쉬는 것?(웃음) 최근 가장 행복했을 때가 프로그램 중간 펑크로 4~5시간이 생겨 홍대에 있는 만화방에 갔을 때에요. 슬램덩크도 보고, 헌터헌터, 나루토도 보고요. 너무 오타쿠 같아서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웃음). 아무래도 난 ‘회사원’이니 회사 필요에 맞게 움직여야 하고 공장처럼 프로그램을 찍어내야 하죠. 내 판타지는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에요.”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라면?
    “옛날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오늘의 요리’ 같은 것. 캐릭터도 됐고, 누가 설거지를 맡느니 그런 거 다 됐고.(웃음) 캐릭터나 설정 같은 모든 게 소거된 다큐멘터리 스타일인 거죠.”

    ―삼시세끼나 윤식당에도 다 요리가 들어가는데요.
    “좋아하니까 그 느낌으로 풀지만 그것에만 집중하진 않아요. 엮인 삶이랑 캐릭터 같은 게 중심이죠. 요즘 넷플릭스를 보면 ‘셰프의 테이블’이란 프로가 있는데 다른 것 없이 전 세계 유명한 셰프가 어떤 요리를 어떻게 만드는지만 보여줘요. 얼마 전 정관스님이 나왔는데 ‘이런 절에서 이런 채소를 따다 이런 요리를 만든다’가 끝이에요. 다른 거 없어요. 아무것도. 스님이 작품 끝나고 광고를 찍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감정의 질척거림조차 귀찮아하는 시기가 올 거라 생각해요. 사실 우리 프로그램은 굉장히 질척거리는 프로에요(웃음). 캐릭터가 있고 투닥거리다가 그럼에도 동료를 사랑하고…. 앞으론 좀 더 건조하면서도 단순하고, ‘쿨’한 방식으로 변할 것 같다. 내 욕망이기도 하고 앞으로 그런 식으로 트렌드가 변할 거란 생각도 들어요.”

    ―공감을 일으키려면 시청층을 어디에 맞추나요?
    “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를 생각하게 되죠. 내가 즐겁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지 않나요? 내가 이해는 해도 백퍼센트 즐기지 못하면 할 수 없어요. 프로듀스 101이 대표적이에요. 올해의, 아니 10년간 최고의 프로그램은 프로듀스 101이 될 거에요.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그 스킬을 연마해제 2의 프듀를 만든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프로그램도 제 나이와 함께 늙어가겠죠. 후배들 도움을 받아 그들의 색깔도 넣고 그렇게 어우러질 거 같아요.”

    ―소소한 일상에서 웃음과 공감을 주는 게 PD님 기조였잖아요. 그게 바뀔 거 같나요? 2017년도 예능 스타일은 어떨 것 같아요?
    “SF·범죄 스릴러 같은 장르 물이 우리나라에선 안될 거라 했는데 요즘 OCN 채널의 프로그램들 날아다니잖아요. 장르 물은 기본적으로 감정이입하는 게 아니고 한 발짝 물러나 쳐다보는 것이에요. 몰입도는 낮을지언정 보편적인 거죠. 버라이어티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싶어요. 올해 제일 신기한 게 ‘알쓸신잡’인데, 하면서도 이게 될까, 이걸 볼까 싶었는데 됐어요. 예능의 루틴이란 건 보기 힘든 연예인이 나와 시선 끄는 게 1번이에요. 본인만의 확고한 콘텐츠가 있는 분들이지만 이 분야에 관심 없는 사람 입장에선 민간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늘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을 티비 속으로 위치만 옮겨 놓은 것이에요. 이게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걸 보고 저도 트렌드를 새로 많이 배웠어요.”

    ―2012년 낸 에세이집을 보면 ‘40세가 되면 콧수염을 기르고 술집을 열겠다’고 했어요. 마흔 문턱을 넘겼는데 당신의 50대는 어떤 식일까요?
    “하하. 철없을 때 쓴 거라…. 50대가 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찍고 있을 것 같아. 지금은 매여 있는 게 너무 많아요. 프로그램을 한다는 건 여러 책임감이 따르죠. 날 고용해준 회사는 이익을 얻어야 하고, 믿고 따르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줘야 하고, 참여해준 연예인들은 광고든 캐스팅이든 이익이 있어야 하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이런 걸 다 신경 써야 하는 게 좀 힘들 때도 있어요. 굳이 저 연예인의 이미지를 생각해주지 않아도 되고 내 후배들의 살길을 열어주지 않아도 되고 굳이 큰 이익을 거둬들이지 않아도 되는 작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심심할지도 모르지만(웃음). 50대가 되면 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이끌어갈 재능이 남아 이을 것 같지도 않다(웃음) 그래서 올해가 나한테 굉장히 중요해요. 후배들 지분이 점점 커져가고 내 판단력과 감도 줄어들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그걸 원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때는 소소한 시청자들을 위해 소소한 나의 프로그램을 소소한 나의 스태프들과 함께 찍고 싶은 게 꿈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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