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빅스비, 조용히 해

    입력 : 2017.07.01 03:01

    [마감날 문득]

    스마트폰을 바꿨더니 말소리를 알아듣는 기능이 있었다. 그 이름은 빅스비. 어렸을 적 환호했던 미국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 주인공 이름이었다. 빌 빅스비. 선량하고 맹하던 빌 빅스비가 열 받으면 헐크로 변하는 내용이었다. 빅스비가 화를 내면 눈이 샛노랗게 변하면서 등부터 옷이 찢어지곤 했는데, 우리는 왜 빅스비 바지는 절대 찢어지지 않을까를 두고 격론을 벌이곤 했다. 어른이 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빅스비가 고탄성 스판 바지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지마저 찢어지면 19세 관람가 내지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것이어서 아예 그 미국 드라마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폰 시리와 구글 알렉사에 우리나라 빅스비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삼성이 내수 기업이었다면 빅스비가 아니라 길동이나 춘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삼성이 왜 헐크가 변하기 전 인물인 빅스비를 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전화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런 기능이 있었어?" 하면서 전화기를 놓고 "빅스비, 빅스비" 하고 불렀을 때, 내 빅스비가 나서서 대답했었다. "네. 듣고 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빅스비 기능이 업데이트되는 것 같긴 한데, 실생활에서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재미삼아 "빅스비, 지금 몇시야?" 하면 시각을 알려주는 정도다. 물론 전화기를 향해 그렇게 소리칠 때, 전화기는 현재 시각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다. 택시기사는 내비게이션 볼륨을 좀 크다 싶을 정도로 틀어놓고 있었다. "잠시 후, 과속 단속 구간입니다", "3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같은 소리가 계속 나왔다. 갑자기 손에 있던 빅스비가 대답했다. "네, 그렇군요." 택시기사와 나 사이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택시기사의 내비게이션과 나의 빅스비가 대화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뒤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빅스비, 조용히 해!" 빅스비는 조용히 하지 않고 "정보를 검색해 봤어요" 하더니 '종이에'를 검색해 보여줬다. 이어 "항상 여기 있을게요. 언제든 다시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빅스비 끄기'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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