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제국주의 비판, 근대적 개혁 요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토대가 돼"

    입력 : 2017.06.30 03:04

    [신간회 학술대회]

    - 기조강연·종합토론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성과 국내외에 확산시킨 연결 고리"

    "신간회는 1907년 신민회가 표명하고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공식화된 민주공화주의가 우리 민족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한민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해서 일본제국주의의 비민주적 억압정책을 비판하고 근대적 개혁을 요구할 수 있음으로써 정치 사상적 진보를 이루었고 이는 훗날 대한민국 수립의 토대가 됐다."

    학술대회의 기조 강연을 맡은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이후 한국근현대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신간회 운동이 차지하는 의미를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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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서울 YMCA 대강당에서 열린 신간회 재조명 학술대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종합 토론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정 교수는 "우리 근현대사는 '자주적 근대화'가 큰 흐름을 이루고 이는 민주공화주의에 의해 개명된 개인들이 정치·경제·문화적 자주독립을 추구해 온 과정"이라며 "신간회 운동은 그 이전 독립운동이 이룬 성과를 국내외에 확산시킨 중요한 연결고리"라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 이와 관련, 김기승 순천향대 교수는 "신간회는 국가건설 구상은 분명히 밝히지 않았지만 민중을 조직화하고 운영한 과정 자체가 민주공화제의 실현이었다"고 말했다. 윤덕영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4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일제가 허용한 유일한 정치단체였던 신간회를 통해 정치적 훈련을 경험했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조규태 한성대 교수는 "신간회에 적극 참여했던 천도교는 그 이전에 이미 교단을 민주공화적으로 운영했으며 이는 신간회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박환 수원대 교수는 그동안 신간회 운동 연구가 변화해 온 과정을 설명했다. 1960~70년대는 주로 '항일민족운동' 관점에서 접근했고, 1980~90년대는 통일 지향이란 현재적 목표가 강조되면서 '좌우합작' 관점이 중시됐으며, 2000년대 이후엔 탈(脫) 이념의 실사구시적 입장이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학계의 통상적 이해와 다른 관점을 제시한 연구 발표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김인식 교수의 발표에 대해 황민호 숭실대 교수는 "신간회 창립 주역 중에 조선공산당 당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며, 반제(反帝)민족협동전선론 등 해외 정치 운동·노선의 영향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기승 교수의 발표에 대해 조형렬 고려대 연구교수는 "신간회 해소의 찬반 논쟁 정리에 집중하다 보니 해소론이 제기되는 배경과 시점 등에 대한 정세 분석이 부족해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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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회,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창립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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